농민 김용환(58.청도군 화양읍)씨는 마당 한 구석에 처박혀있는 경운기며 트랙터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매년 300만원씩 농기계 값을 갚은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 남은 원금만 1천만원이다.
그나마 쓰임새가 많으면 속이 덜 쓰릴텐데 일년에 부지런히 사용해 봐야 열흘도 채 안된다.
"지난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경운기, 트랙터 등 농기계를 반값(정부 보조 50%)에 공급한다기에 마구 사들였습니다.
논 4천여평에 밭도 2천여평이나 되니까 기계가 많으면 편하겠다 싶었습니다.
경운기, 이앙기, 콤바인이 있는데도 트랙터, 경운기, 관리기, 농산물건조기를 추가로 구입했죠. 지금은 모두 애물단지가 돼 버렸지만…. 남아도는 농기계는 처분할 방법도 없어서 마냥 세워두고 있습니다".
농촌에 고가 농기계가 남아돌고 있다.
적정 작업면적도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사들이다보니 농가는 빚에 쪼들리고, 수천만원에 이르는 고가 농기계는 구석에 처박혀 있다.
문경시의 경우 지역에 보급된 콤바인, 트랙터, 이앙기 등 주요 농기계는 모두 3천497대로 적정대수를 훨씬 초과했으며, 작업면적도 적정면적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상황이다.
1천160대가 보급된 트랙터의 경우 한 대당 경지면적이 연간 8.3㏊로 적정면적 18.8㏊의 45%도 안된다.
1천933대가 보급된 이앙기 역시 한 대당 연간 8㏊의 논에 모내기를 하는 것이 적당하지만 실제로는 4.2㏊에 불과하다.
청도군내 농기계는 경운기 8천89대, 트랙터 968대, 스피드스프레이어(분무기) 283대, 이앙기 168대, 관리기 5천627대, 바인더 2천872대 등 15개 기종에 총 2만3천312대에 이른다.
청도군 전체 경지면적은 1만978㏊로 군내 농가 9천500여 가구로 나누면 농가당 평균 농지면적은 3천여평에 불과하다.
그러나 농가마다 같은 기종의 농기계를 평균 1, 2대 이상 보유하고 있다.
특히 경운기는 2대 이상 소유한 농가가 20% 이상 되는데다 트랙터, 콤바인 등 수천만원대의 고가 농기계도 연간 사용일이 4, 5일에 불과하다.
대당 가격이 최저 1천만원에서 최고 7천만원대를 넘는 고가 농기계가 이처럼 남아돌고 있는 것은 정부가 적정 대수나 타당성을 검토하지 않고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했기 때문.
정부는 농기계 가격의 20~50%를 무상 지원하고, 나머지 대부분을 저리로 융자해 줬다.
농가들은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농기계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공동 구매단도 구성하지 못했다.
무상지원 기간이 끝나면 값 비싼 농기계를 제값을 다 주고 사야한다기에 무턱대고 사들였던 것이다.
농민 황모(65.문경시 산북면)씨는 "정부 지원 덕분에 당시에는 수천만원짜리 농기계도 단돈 몇백만원만 주면 구입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 때문에 농가 부채만 급증했고, 대부분 일년에 기껏 20~30일 사용한 뒤 헛간에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다른 농민 박모(54.청도군 이서면)씨는 "경운기 한 대면 2천평 복숭아농사를 충분히 지을 수 있는데 반값 공급 유혹에 넘어가 경운기와 관리기를 추가로 구입했었다"며 "지금은 사용할 일도 없어서 그냥 버려두고 있는데 이젠 고철이 돼버려 쓰지도 못한다"고 했다.
정부가 한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위탁영농회사 사업마저 지금은 흐지부지된 상태. 읍.면마다 한 곳이상 설립됐던 위탁영농회사는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그나마 위탁영농회사라도 있으면 그곳에 농기계를 빌려줄 수 있을텐데, 이래저래 효용가치가 떨어진 고가 농기계는 농가의 골치덩이가 됐다.
문경시 한 관계자는 "농기계는 중고매매상이 없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 몫도 못해보고 폐품 처리되는 실정"이라며 "경북 어느 곳 할 것없이 수천만원짜리 고철이 농촌에 즐비하다"고 했다.
청도.최봉국기자 choibok@imaeil.com
문경.박동식기자 parkds@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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