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수목원 자연교육 체험

지난 2002년 5월 '전국 최초의 도시형 수목원'을 표방하며 문을 연 대구 수목원(달서구 대곡동)이 이 달로 개원 2주년을 맞았다.

지난 달부터 하루가 다르게 녹량(綠量)이 풍성해지고 있는 수목원은 평일 2천~4천여명, 주말에는 2만여명이 찾는 대구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청소년 그린스쿨, 수목원 자연해설, 조경수 관리강의 등 관람 수준에 그치지 않고 수목원에서 자연을 배우려는 이들의 발길이 바빠지고 있다.

◇"자연에서 배워요"

지난 달 30일 오전 11시쯤 대구수목원. 4천여명의 시민들이 수목원을 찾은 이날, 자연해설사 선생님이 들려주는 나무와 꽃 이야기에 다사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 30여명이 푹 빠져 있었다.

교육과학연구원에서 의뢰한 야외수업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꽃 이름에 얽힌 사연을 노트에 받아 적거나 꽃, 나뭇잎을 관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이 꽃의 받침이 매 발톱을 꼭 닮지 않았나요? 그래서 이름이 '매 발톱 꽃'이예요". "신라 선덕여왕이 병풍에 그려진 꽃을 보고 향기가 없다고 했던 설화 기억나지요? 그게 이 '목단'인데요... 실제로 향기는 나는데 꿀이 거의 없어서 벌과 나비가 찾지 않는데요".

자연해설 자원봉사자로 1년째 일하는 조명순 선생님의 설명이 술술 흘러나오자 아이들이 연신 귀를 쫑긋 세운다.

"대부분 1시간짜리 해설을 하는데 그치지만, 오늘은 특별히 학교측에서 자연해설을 부탁해서 다양한 자연학습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오전 10시쯤부터 시작해 오후 2시까지 진행된 이날 수업에서 아이들은 약초원, 활엽수원, 침엽수원, 화목원, 습지원, 야생초화원 등 수목원내 곳곳을 둘러봤다.

이 가운데서 아이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곳은 습지원과 약초원.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습지를 둘러보면서 책에서만 본 갈대, 부들, 옥잠, 연꽃을 눈으로 보고 개구리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빵의 재료인 밀과 밥상에 올라오는 보리가 어떻게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 지도 오늘 배웠다.

잠시 쉬는 시간에 떨어진 선생님의 숙제도 재미있다.

오늘 과제는 '가장 관심 있는 꽃이나 나무 그리기'. 병현이(12)는 '호랑가시나무'를 주제로 정했다.

'특징. 잎이 딱딱하며 끝에 가시가 돋아있다.

미국에서는 이 나무로 크리스마트 트리를 만든다.

호랑이가 털이 가려우면 이 나무에 등을 긁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색연필로 그린 나뭇잎에 제법 생동감이 돈다.

꽃이나 나뭇잎이라도 호기심에 슬쩍 꺾으려다가도 선생님의 애정어린 충고에 슬며시 손을 거둔다.

"여러분이 지금 꽃을 꺾으면 다음에 여러분들의 동생이 못 보겠지요?". 선생님과 수목원을 한 바퀴 돌면 자연을 아끼는 마음도 자연스레 생기기 마련.

오후 1시쯤. 점심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생태지도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별다른 주제가 없이 자기가 그린 나무, 꽃 그림을 대형 도화지에 붙여 넣는 수업. 10여장의 그림을 붙이고 나니 그럴듯한 한 폭의 '숲'이 완성됐다.

이 생태지도는 교실에 붙어 한 동안 아이들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굵은 모래를 깔고 화초 모종을 넣은 뒤에 가는 모래를 다시 넣으세요". 화분 만들기에 참가한 아이들은 훈장처럼 소중하게 '벌 개미취' 화분을 안고 일어선다.

'오늘은 그늘에 뒀다가 내일부터 하루 한 번씩 물을 줘야지…'.

소희(12)는 "4시간밖에 안 되는 수업이었지만 선생님들의 설명이 재미있고 너무 즐거웠다"며 "더 많은 친구들이 이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들뜬 표정을 지었다.

◇자원봉사 자연 해설사 활동

대구 수목원에서는 현재 25명 가량의 자연 해설 봉사자들이 활동중이다.

'자연 해설사(지도자)' 과정은 '도심 속에서 자연을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수목원'을 표방한 대구 수목원이 지난 해부터 개발.시행중인 프로그램. 9주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자연 해설사 자격이 주어진다.

자연 해설사 과정은 신청이 조기 마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퇴직 교사, 가정주부, 대학생, 봉사단체 회원 등 직업과 연령이 다양하지만 '미칠 정도로 자연이 좋아서'라는 이유는 다 같다.

자연 해설사들의 소모임인 '수목회'도 자발적으로 결성됐다.

"한번은 한 아이가 그러더라구요. '선생님, 저 할미꽃은 허리가 꼿꼿하네요? 디스크 수술 했나봐요'. 자연과 만나면 아이들의 기발함과 상상력이 저절로 날개를 펴는 것 같아요". 이경애(47.여) 수목회 부회장은 더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자연학습을 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자연 해설사들은 교육과정동안 △대구 수목원 소개 △식물 분류 △이름, 특성 알기 △식물표본 만들기 △야생화 분경 제작 △토양의 이해 △압화 제작 △현장 견학등을 거치게 된다.

지난해 3월에 1기생 36명이 과정을 수료한 이후 현재까지 130여명이 수업을 받았다.

교통비조차 없는 순수 자원봉사이지만 매주 2~3회 가량의 '출강'이 즐겁기만 하고, 수료후에도 열성적으로 식물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퇴직교사인 조태호(71)씨는 "남자들은 퇴직 후에 보람있는 일 찾기가 힘든데 왜 좀 더 젊었을 때 이런 일을 못했을까 아쉽다"며 흐뭇해 했다.

◇수목원이 제 기능하려면

자연해설사들은 수목원 운영에 관해 여러가지 아쉬움을 지적했다.

우선 내방객이 너무 많다는 점. 지난 달만 해도 대구 수목원을 찾은 시민이 평일 평균 2천~4천500여명, 주말 2만~2만5천여명선이었다.

대구 수목원보다 10배나 넓은 서울의 국립 수목원이 동 시간대 출입 인원을 1천명으로 제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구 수목원의 현재 출입인원은 수용능력을 훨씬 초과한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한 해설사는 "인솔하는 인원이 10명 가량이면 가장 적합한데 30~40명이나 되는 한 반을 통째로 맡으면 인솔하기가 벅차고 이때문에 설명도 건너 뛰기 쉬워요"라고 말했다.

자연해설을 요청하는 데 비해 해설사들이 부족한 점도 아쉬움으로 꼽혔다.

또 관람 인원이 많다보니 생기는 수목 훼손이나 질서유지를 위해 공익요원들이 더 많이 보강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구 수목원 이우순 소장은 "대구 수목원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느끼기 위한 체험교육의 장이고 공원이나 유원지가 아닌데도 일부 시민들이 즐기고 노는 곳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대구 수목원은 한정된 부지에 인공으로 조성돼 교육기능에 중점을 둔 만큼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도 아끼고 사랑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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