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카네이션과 이라크 미군

어제(5월9일)는 전세계 대다수 국가의 사람들이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를 기린 어머니날이었다.

올해로부터 꼭 100년전인 1904년,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시작된 어머니날 행사는 1913년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한뒤 전세계로 번졌고 우리나라도 1956년 어머니날을 제정했었다가 25년전부터 어버이날로 바꿨다.

우리만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바꾼 취지는 '아버지의 날'이 따로 없어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크게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조상과 노인들께 대한 은혜와 사랑을 함께 되새기자는 한국적인 가족정서와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어머니날을 그대로 두고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날'로 따로 정해 카네이션 대신 장미꽃을 선물하고 있다.

5월5일도 우리와 같이 어린이날로 정했지만 사실은 5일은 '아들의 날' 의미가 더 강하고 '딸의 날'도 따로 정해(3월3일) 인형선물을 한다고 한다.

그저께 한국의 어버이날에 팔린 카네이션이 565만 송이라는데 하루 다음날인 어제 일본의 어머니날에는 약 90%의 국민중 35%가 카네이션을 사고 14%는 백합 등 다른 종류의 꽃을 샀으며 나머지는 옷.스카프.케이크 등을 선물한 것으로 추정했다.

카네이션만 송이로 따지면 3천만송이쯤 팔린 셈이다.

100여년전 '어머니 잘 모시기 운동'을 벌였던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란 작은 마을의 소녀 안나 자이비스가 돌아가신 어머님의 무덤 주위에 카네이션을 심은 것을 계기로 '어머니날 꽃'이 된 카네이션은 이제 한세기가 지나는 동안 전세계인에게 은혜와 사랑을 상징하는 꽃의 이미지로 굳혀진 셈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꽃 카네이션은 지난 100년 동안 지구촌 곳곳에서 꽃의 이미지대로 은혜와 사랑이 넘치게 해왔을까.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백년 이상을 해마다 카네이션으로 은혜와 사랑을 기려온 미국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역사를 돌아보면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만한 역사적 행동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디언과 흑인에 관한 역사와 기억들에는 그들(인디언과 흑인)로부터 사랑과 감사와 존경의 뜻이 담긴 카네이션을 받을만한 기억들은 거의 없다.

빈번한 자국 대통령의 암살의 역사에서도 사랑보다는 폭력적 이미지가 강했다.

대통령의 성추문 이야기나 1702년 이후 300년동안 일부 역대 대통령과 지도자들의 갖가지 추문과 사생아 낳기 등 부도덕한 기록들을 보면 카네이션 종주국의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다.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미군들의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비양심적인 변태적 만행도 카네이션 종주국의 이중성을 새삼 극명하게 드러내보인 경우다.

오늘 아침에도 벌거벗긴 포로를 휴지 구기듯 구겨놓고 위에 걸터앉은 군복입은 폭력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추가로 폭로됐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주둔군 만행의 최고책임자의 럼즈펠드 국방장관 해임을 거부하고 있다.

끼리끼리는 카네이션을 주고받으며 '가족 사랑'을 나눴을 미국민들조차 69%가 '이라크 포로 학대를 이유로 국방장관이 사임 해야할 필요는 없다'는 식의 응답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의 의미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들의 주장대로 후세인이란 독재자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자유와 풍요한 경제를 안겨다준 군대라면 어제쯤 이라크 주둔 사령관은 테러 폭탄 대신 감사와 존경의 꽃이라도 받아야 옳았다.

그러나 카네이션의 날인 어제도 이라크내 곳곳에서는 미군에 대한 증오에 찬 전투로 지샜다.

지각있는 일부 자국의 언론만이 렘즈펠드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을뿐이다.

이라크 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미군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살인, 린치 등 숱한 비인간적 행위들도 우리는 아픈 상처로 기억하고 있다.

이라크 포로에 대한 사디즘적인 학대와 어머니날에도 점령지 도심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37명의 목숨이 교전에 희생되는 참상을 보면서 우리군대의 파병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포로의 성기에 전선을 연결하고 여성의 나체 사진을 찍고 능욕하며 개를 풀어 물게 하고 'R21'이란 고도의 고문기법을 연구개발해 실험한 군대에게 인류에 대한 사랑과 약한자를 돕는 은혜가 있다고 믿을 수는 없다.

그런 타락한 군대의 범죄를 보면서도 안보와 경제를 위해 파병을 해야만 하는 우리 처지가 새삼 서글퍼진다.

자기네 가족끼리는 카네이션으로 사랑이니 은혜를 말하면서 무력한 약소국의 무장해제된 지구촌 가족은 발차기로 멀리 날려 보내는 게임을 즐기는 이라크 주둔 미군의 어머니들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제 자식사랑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성기가 채여 날려 가는 이라크 병사의 어머니의 가슴에 과연 '우방국'에 대한 은혜와 사랑이 심어질까도 의문이다.

그런 미국이 지난 주말 우리정부쪽에 대사관을 새로 짓겠다며 무려 3만평이나 내놓으라 했다고 한다.

미국, 그들은 언제쯤 지구촌 가족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이 담긴 5월의 카네이션을 받아볼 수 있을까.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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