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리는' 노점상 임란희씨

"절 돕고 싶으면 필요한 물건을 사가세요! 그냥 주는 돈은 받지 않습니다".

휠체어에 각종 생활용품을 싣고 팔러다니는 장애인 임란희(林蘭姬.62.여)씨. 임씨는 비가 오거나 몸이 아픈 날을 빼고는 매일 오전9시면 집을 나서 오후7시까지 대구 시내를 누빈다.

출생과 가족에 대한 기억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는 임씨는 남다른 사연으로 대구와 인연을 맺었다.

6세때 집을 나와 56년 세월을 혼자 살아온 임씨는 5년전 서울에서 새벽에 시장보러 나갔다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 부분을 절단한 뒤 몇번이고 자살하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그러던 중 '대구에 가면 살 만할 것'이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내려 왔고 3년전 대구알코올중독자협회의 한 후원자를 만나게 됐다.

3년전 대구시내 공원 등지에서 소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임씨를 본 박모(53) 후원자는 임씨에게 매달 7,8만원의 생활비를 주었고 휴대전화와 현금 30만원을 주며 휠체어를 타고 생활용품을 팔 것을 제안, 행상에 나선 것. 임씨의 휠체어 주위에 달린 생활용품들의 무게는 50∼60kg. 목욕수건과 목욕모자, 수세미, 행주, 안마기, 가위 등 70여가지의 각종 물건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임씨는 "힘이 들지만 도와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대소변을 보는 것조차 힘든 임씨는 점심식사도 거른 채 다니다 파출소나 구청, 공원 등 장애인용 화장실을 이용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경찰, 공무원들이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했다.

특히 약전골목의 몇몇 상인들은 일부러 임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필요했던 생활용품들을 구입해 준다고 밝은 표정을 보였다.

그러나 좌절할 때가 더 많다.

가게 10곳을 방문하면 7, 8곳은 '여기 잡상인이 한두사람 오느냐? 필요없으니 그냥 가라!'고 문전박대하기 때문. 임씨는 돌아서서 많이 울었지만 생계수단이라 그만 둘 수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달성동의 한 쪽방집에 돌아와 '김치와 밥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임씨는 "찬물 한 그릇을 먹고 살아도 남에게 신세지거나 피해주지 않고 혼자서 잘 헤쳐나가겠다"며 조용히 웃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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