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미국의 선택

1897년 12월 18일, 남아프리카에서 박해를 받고 있던 인도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간디가 남아프리카 동부의 항구도시 더반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백인들은 간디를 인도로 추방할 것을 요구하며, 그의 상륙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간디가 상륙하자 백인들은 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튿날 신문에까지 보도된 이 사건으로 곤혹스러워진 영국정부는 식민장관을 통하여 간디를 공격한 자들을 처벌하라고 현지 정부에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간디는 영국정부의 조치에 반대하였다.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을 처벌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보다는 그들이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을 바랄 뿐이라는 것이 간디의 반대 이유였다.

후에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즉 우리에게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더 잘 알려진 간디의 반식민투쟁의 이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이다.

비폭력은 가장 위대한 사랑이며, 이것만이 인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던 간디는 폭력이 짐승의 법칙인 것 같이 비폭력은 인간의 법칙이라고 갈파하였다.

이런 점에서 간디에게 있어 비폭력은 투쟁의 방식이라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구현하는 가장 성스러운 행위였다.

비폭력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자기 정화라는 말 속에 그의 이런 신념이 잘 드러나 있다.

비폭력이 궁극적으로 폭력을 이긴다는 것은 간디뿐만 아니라 유사 이래 수많은 성현들의 입을 통해 전파되어 온 진리이다.

예수는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라고 했고, 노자(老子) 또한 몰아치는 소나기는 아침나절을 넘기지 못함을 경고하면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역설했다.

사실 성현들의 이런 경구가 아니더라도,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바람의 폭압적인 힘이 아니라 햇볕의 따사로움이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실천 여부와 관계없이 물리적인 강제력보다 부드러움이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결국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라는 것은 모두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폭력만이 궁극적인 선택인가라고 묻는다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솔직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특히 폭력이 명백히 자행되고 있는 상황 아래에서 고수되는 비폭력은 당사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그 폭력을 승인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중해진다.

24년 전 오늘 광주의 선택을 우리가 비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결국 우리가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비폭력을 일관되게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려깊게 숙고된 폭력을 거기에 적절히 혼용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고민이 대안적 폭력의 한계 문제이다.

여건상 폭력의 선택이 불가피할 경우 그것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 불가피성만 인정된다면 대안적 폭력은 언제 어디서나 무제한적으로 허용되어도 좋은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목적과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의 함수관계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목적이 옳으면 수단도 옳다는 생각을 한다면 폭력의 사용범위는 그만큼 넓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에 선다면 비록 그 불가피성이 충분히 인정되더라도 폭력의 사용에 대해서는 최대한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방어적 폭력이다.

현재 자신이 폭력에 분명하게 노출되고 있을 때, 그리고 그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어떠한 제3의 방법도 없다는 것이 명백할 때, 오직 이때에 한하여 대안적 폭력은 행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폭력이 어떤 목적의 구현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 선택된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폭력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상을 달리하는 또 다른 목적이 자신의 실현을 위하여 마찬가지로 폭력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 이후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폭력이 위험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선택이 현재 부딪치고 있는 곤경은 그 선택의 순간부터 이미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분명하게 폭력 이후를 고려하고 행사된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박 원 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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