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공부해야 할 애들을 집으로 보내면 어떡하란 말입니까? 학원에 보내든 독서실에 보내든 무슨 수를 내야죠".
지난 주부터 대구의 고교 0교시가 폐지되고 방과 후 활동이 대폭 학생 자율에 맡겨지면서 근심에 빠진 학부모가 적잖다.
학부모 입장에선 다소 안쓰럽긴 해도 고교생 자녀가 아침 일찍 등교해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는 게 마음 편할지 모른다.
대학 입시를 앞둔 자녀를 저녁 내내 '상전'으로 모신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곰곰이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의 가정 문화는 지금껏 어떠했는가, 부모의 삶과 자녀의 삶은 얼마나 행복하게 어울렸는가, 자녀를 밖으로 내몰지 않고는 입시라는 관문을 돌파하기 어려운 것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그동안 우리나라 가정은 학교와 학원에 의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져왔다.
시험 성적에 가족 전체의 희비가 좌우되고, 수능시험이라는 단판 승부에 가정의 모든 계기판을 맞춰야 하는 상황을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며칠 전 만난 한 엄마는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고2인 딸이 여섯시쯤 집에 들어오면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 지 걱정입니다.
3일밖에 안 됐는데 생활이 온통 꼬였습니다.
TV도 못 켜고, 애 방을 힐끔거리고, 전화까지 맘대로 못 받겠어요. 어쩌다 부모자식간이 이렇게 됐는지 답답합니다".
학생들 심경도 비슷한 모양이다.
고교 교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저녁에 사설 독서실에 다니거나 학원 야간반, 새벽반을 동시에 듣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반면 일찍 집에 가서 공부한다는 학생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 고3 담당 교사는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과도기 아니겠느냐"라고 풀이했다.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동안 입시 교육에 빼앗겨왔던 가정의 본 모습을 되찾는 수업을 이제야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자신의 학급 한 학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 주말에 가족끼리 몇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하더군요. TV 한 시간 이상 보지 않기, 가족 모두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 서로 공부 걱정과 공부 핑계 대지 않기 등등을 얘기하는데 표정이 너무 밝아서 보기 좋았습니다".
이때쯤 입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수험생들의 뒤에는 언제나 안정된 가정이 있다는 것,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시간의 절반만 집에서 할 수 있어도 학습 효과는 두배 이상이라는 것, 극성스레 자녀를 몰아붙이는 부모보다 무엇이든 함께 하는 부모가 훨씬 행복하다는 것.
고교생 자녀가 있다면 오늘 저녁에라도 일찌감치 함께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가까운 공원에 나가 저녁 공기를 쐐 보자. 학교에, 학원에, 독서실에 자녀를 내몰아놓고 TV 드라마나 전화 잡담, 술자리에 시간을 뺏기는 것보다 얼마나 유익한가. 김재경기자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