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老)화가 정점식 "시민과 화가, 많은 대화 나눠야"

노(老) 화가는 젊어 보였다.

목소리에 열정이 묻어났다.

최근 앓았던 폐렴 증세도 거뜬히 뛰어넘은 듯했다.

아파트 작업실엔 아직 마르지 않은 붓과 캔버스가 널려 있었다.

'이젠 늙어서…'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예술 혼을 불태울 여력은 충분해 보였다.

대구 현대미술의 장을 활짝 열어젖힌 극재 정점식(87) 화백. 대구 화단의 최고 원로이자, '모던 아트'의 선구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정 화백이 한국 화단에 미친 영향에 주목, '2004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다.

덕수궁미술관은 다음달 2일부터 8월8일까지 '올해의 작가전'을 통해 정 화백의 시대별 경향을 담은 작품 80여 점을 선보인다.

계명대도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9월1일부터 30일까지 계명대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극재 정점식 화백 초대전'을 연다.

정 화백의 50년 작품세계를 갈무리하는 셈이다.

정 화백은 1930년대 후반과 40년대, 일본과 중국 하얼빈에서 수학한 뒤 50년대부터 줄곧 대구에 뿌리를 두고 지역 화단을 이끌어왔다.

55년 '대구미술가협회'를 발족해 지역의 구태의연한 회화풍토를 바꿨고, 57년 반(反) 국전(國展) 성향의 전국 규모 단체인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했다.

그는 "대상의 사실적 묘사와 자연주의에 치우친 국전에 대립각을 세우며 50년대 '모던아트'를 주창했다"며 "70년대 접어들어 국전도 현대미술의 조류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한국 미술계의 20년 뒤를 내다본 것이다.

정 화백의 작품에는 '형식주의'와 '자동주의', '동양성'이 짙게 배어 있다.

52년 대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을 때 마해송은 '서양화를 수묵화처럼 그렸다'고 평했다.

붓의 번짐, 찍음, 칠함의 형상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동양적 사상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50년대 중반 작품 '성난 소'와 관련, 그는 "소를 그린 게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 있는 뭔가를 표현했고, 그 속에 전쟁의 비참함이 담긴 형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잠재의식에서 나온 형상의 표현을 그는 '자동주의'로 불렀다.

정 화백은 현대미술은 '비의도적'이어야 하고, '범죄수사적'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술가가 의도성을 가지면 돈, 인기, 겉치레에 치중하고, 참 작품도 나오기 어렵다"며 "비의도적 행위를 통해 작품세계를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대미술은 지문 족적을 쫓는 범죄수사처럼, 점 선 등을 추적하는 과정"이며 "여인의 실체를 한 꺼풀씩 벗겨 가는 것과도 같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경험'이나 '발견'이라는 것이다.

후진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현대 작가들은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읽으면서 자기 독립성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본에 지배받는 예술'을 경계하면서 "예술가들이 '품삯 살이'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50년간 한 길만 걸었고, 부단한 자기혁신을 통해'새로움'을 추구한 정 화백은 계성학교 교사와 계명대 교수를 거치면서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고, 2002년에는 계명대 극재미술관에 자신의 대다수 작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국민이 작가와 서로 호흡하고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사회에 살고픈 게 마지막 희망입니다"

원로 화가의 한마디에는 현대미술의 대중화를 바라는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