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람난 가족'

깊은밤 인기척 없는 어느 숲속.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두 남녀 앞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정적을 깨는 여자의 비명.... 나뭇가지에 사지가 묶인 채 잔인하게 살해된 여학생의 시체. '처녀(Virgin)'라는 칼자국이 살 속 깊이 패어 있다. 할리우드 영화 '체리 폴스'다.

공포영화에는 하나의 룰이 있다. '밝히는'(?) 여자는 언제나 살인마의 표적이 된다. '버닝'이며, '13일밤의 금요일' 등에서처럼 둘이 몰래 일을 벌이는 남녀는 틀림없이 창에 꿰어 죽거나, 도끼를 맞는다. 밝히는 정도에 따라 잔혹한 최후의 수위도 다르다.

최후까지 살아남는 여자 주인공은 늘 '성'에 대해서는 초연하다. 누가 찝적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호수에서 남들은 다 옷을 발가벗고 목욕해도, 이 주인공의 옷차림은 항상 흐트러짐이 없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도덕이 해이한 여성에 가하는 영화의 폭력(?). 그 룰을 깨는 것이 '체리 폴스'라는 영화였다. 처녀들만 골라 죽이는 살인마의 등장. 그래서 영화 속에 집단 섹스가 난무하기도 한다.

에로계에서도 하나의 규칙이 있다.

여인의 '몸 마름'은 언제나 몰락을 가져온다.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의 금발미인들처럼 죽임을 당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곤욕스런 상황에서 온갖 고초를 다 당한다.

'자유부인', '미워도 다시한번'를 거쳐 근작 '해피 엔드', '밀애'까지. '궤도이탈'(?)에 대한 응징은 가혹하다. '불결'의 책임은 늘 여성의 몫.

'해피 엔드'처럼 잔혹한 죽음을 맞거나, '밀애'처럼 정처 없이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정사'의 이미숙도 한국에서 모든 것을 접고 망명(?)의 길을 떠난다.

흥미롭게 '애마부인'의 경우 귀결점은 가정이다.

이 남자, 저 남자의 손을 타다 결국은 가정으로 돌아온다. 그 속에도 상처는 생긴다. 그러나 받아주지 않으면 속편이 생산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영화 속 '애마'들은 늘 안정된 집으로 돌아와 '후일'을 도모한다.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은 그런 의미에서 혁신적인 영화다. 다분히 여성중심적이다.

더 나아가 남성혐오까지 보여준다.

같이 바람을 피워도 몰락하는 것은 남자고, 죽임을 당하는 것도 남자다. 주인공의 아버지 창근(김인문)은 평생 술에 의지해 살아온 알콜 중독자. 간암 말기에 병원에서 분수처럼 피를 토하고는 임종을 맞는다.

그 아들 영작(황정민)도 그 '나쁜 피'를 고스란히 받는다. 피를 토하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간호사와의 섹스를 상상한다. 출장을 핑계로 애인과 함께 뜨거운 육체의 여행을 다녀온다.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까지 흥분된 여진을 즐기다가 결국 사고까지 낸다.

이 사고로 아들은 끔찍한 죽임을 당하고, 그도 아내로부터 "당신은 아웃이야!"라는 말 한마디로 버림을 받는다.

그러나 여성들은 반대다.

60세의 시어머니 병한(윤여정)은 초등학교 동창생과 바람이 났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른 날 아들 내외와 나란히 누워 "나 요새 난생처음 오르가슴이라는 것을 느껴…" 라는 도발적인 발언을 한다.

아내 호정(문소리)은 옆집 고등학생과 바람이 난다. 영화관에서 은밀한 속삭임도 갖고, "한번 보죠, 교육적으로다" 라며 조르는 '고딩'에게 치맛속을 보여준다.

'바람난 가족'은 불륜과 배신으로 점철된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중심은 '바람'이 아니라 '가족'이다. 가족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은 신뢰다. 그 신뢰를 깨는 것이 위선이고 거짓이다.

감독은 위선을 불륜보다 더 큰 가족해체의 위험신호로 보고 있다. 그리고 가정해체의 '가해자'로 남성을 지목한다. 그래서 에로계의 규칙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에로킹(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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