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젊은 날의 성 해방구 'OO장 여관'

'신난다. 재미난다. OO장의 음란 비디오~'.

대구에 음란비디오로 유명한 한 여관이 있었다. 그 여관의 이름이 'OO장'. 볼만한 포르노가 많아 80년대 장안의 화제를 뿌린 그 여관이다.

당시 TV에 방영되던 '어린이 만화동산' 의 주제곡을 패러디한 이 노래를 부르며 떼로 몰려가 밤새 눈이 발갛도록 포르노를 본 추억. 지금도 30대말에서 40대 초반의 남성분이라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는 유명한 여관들이 몇군데 있었다. 동대구역의 OO장 여관도 그 중 하나다. 특히 동대구역 인근의 여관들은 여행객 보다 포르노를 구경하러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수련회 온 분위기이었다면 과장일까. 대로에까지 나와 호객행위를 했다. "따뜻한 방 있습니다"가 아니라 "좋은 작품 있습니다"가 호객 구호 1호였다.

그러나 OO장의 명성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 여관이 그토록 유명하게 된 데는 비결이 있었다. 뛰어난 작품성(?), 화려한 라인업, 뛰어난 A/S 정신, 과감한 경영이 그것이다.

요즘이야 여관마다 웬만하면 VCR을 다 갖추고 있다. 10만원대니 훔쳐갈 필요도 없는 기기. 그러나 20년 전 VCR은 귀하디 귀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여관은 프론트에서 VCR을 틀어 각 방에 전송하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VOD(Video On Demand 주문형 비디오)가 아니라, 관리자가 틀어주는 것을 일괄 관람하는 극장식이다.

문제는 관리자의 심미안. 당시에는 여러번 복사한 조악한 화질이 테이프가 많았다. 그래서 TV 속은 늘 빗물로 넘쳐났다.

그러나 OO장의 작품(?)은 뛰어난 화질을 자랑했다. 옷의 색상이며, 침대, 그리고 주요부분의 영상은 손에 잡힐 듯 또렷했다. 관리자의 노력이 없으면 구할 수 없는 원본(또는 원본에 준하는)의 테이프들이었다.

또 하나는 별별 포르노가 다 있는 것이다. 거기다 늘 새로운 라인업을 구비해 한 달에 두 세번을 가도 식상하지 않도록 했다. 당시 'woman in OOO', 'Desire OOO'는 회자되던 작품들이었다.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포르노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릿한 음악과 소녀티나던 실비아 크리스텔의 '엠마뉴엘'의 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나치 친위대의 포르노버전인 '일사' 시리즈도 유명했다.

그래도 봤던 작품이 나올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거 봤는데요. 다른 것 없어요?"라고 하면 바로 엄선된 작품으로 교체됐다. 희한한 것은 그것마저도 바꿔달라고 하면 군말없이 바꿔주는 그 A/S정신. "주는대로 받아 먹어"라는 식의 다른 여관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간혹 만원사례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체인화된 여관으로 공수시켜주었다. 항시 봉고를 대기시켰다가 실어날랐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불법이 공공연한 것이었다. 물론 그때야 대구의 수백개의 여관들이 모두 그랬으니,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보는 우리야 좋지만, "이래도 되는거야"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무슨 끈이 있다느니, 조폭과 관련돼 있다느니 등 과감한 경영 비결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90년대 초반 이후 단속도 심해지고, 인터넷 동영상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매력을 얻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혼자서 포르노를 보고 즐기는 시대가 됐다.

한쪽에서는 선배가 포르노를 보는 가운데, 한쪽에선 후배가 리포트를 쓰는, 희대의 집단 포르노관람 문화. 지금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천박함도 묻어나지만, 당시 힘을 주체할 수 없었던 젊은 청춘들에게는 '만화동산'같은 즐거움의 해방구였다.

80년대가 주는 무거움과 역겨움의 역사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하나만으로도 그 곳은 후련한 마스터베이션의 동산이었다.

에로킹(에로영화전문가)

추신: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이 현재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일 것입니다. 그때의 많은 추억들... 같이 나눕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