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때에 맞게 행동하라

인생살이에는 확실히 운세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에 나는 7년 반 동안 강사생활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운세가 가장 막힌 시기였던 것 같다.

취직의 기회는 잘 오지 않았고, 원서를 내면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네 군데에서 취직의 기회가 한꺼번에 찾아왔고, 나는 지금의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운세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온다.

운세의 흐름 앞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까? 운명의 노예가 되어서 운세에 휘둘리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운세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누리며 살아갈 것인가?

한참 힘들었던 시기에, 내가 '주역'을 읽게된 것은 행운이었다.

'주역'은 나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었다.

문왕(文王)도 '주역'의 괘사를 지을 당시에 지극한 곤경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역'에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구절들이 많다.

'주역'의 관점에서 보면, 삶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뜻밖의 행운을 만난 것이 나태하고 교만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불운을 만난 것이 자신을 단련하고 삶의 깊은 뜻을 체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역'을 단순히 운명을 점치는 책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주역'은 물론 점서로 출발하였고, 점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역'이 갖고 있는 보다 크고 중요한 의미는 우리에게 다가온 운명에 창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주역'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때에 맞게 행동하라'.

말은 쉽지만 이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역'의 가르침과 거꾸로 살아간다.

그래서 끝내는 자신의 삶을 망치고 주위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준다.

좋은 운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세운 공이나 부귀, 인기나 명예 같은 것들이 대우주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비추어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성공을 바라보면서 이를 비웃을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코웃음칠 수 있을 때, 우리들은 좋은 운세의 와중에서도 겸손하게 처신할 수 있다.

매사가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릴 때는 더욱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태평한 때에는 안일에 빠지지 말고 항상 그 생각을 어렵고 위태롭게 가져야 한다.

용이 승천하듯이 존재의 비약을 이루어야 할 때에는 돌아보지 말고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을 세웠을 때는 그 공을 감추고 공에 머무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운의 흐름이 극에 이르렀을 때는 멈추고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고집하면 반드시 후회가 따르게 된다.

나쁜 운을 만났을 때 이에 잘 대응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나쁜 운을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존재의 위대함을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귀나 빈천으로 스스로를 가늠하기에는 너무나도 위대하며 아름다운 존재이다.

세상이 우리들을 무시하고 상처를 주더라도, 우리는 이런 세상에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꿋꿋하고 의연하게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역경에 처했을 때는 자신감을 잃지 말고 서두르지 말며, 쉬지 않고 노력하여 실력을 길러야 한다.

낮은 위치에 있을 때는 몸을 숨기고 수양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험한 것이 앞을 막을 때는 기다린 다음에 지나가야 한다.

다툼에 휘말려서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끝까지 가지 말아야 한다.

어떤 때를 만나건, 자신이 마주친 운세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운세의 흐름을 잘 탈 수 있게 되었을 때, 삶의 대반전이 이루어진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순간 한순간이 모두 예술이 되며,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인생이 놀랍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주역'은 말한다.

우리 모두 삶의 예술가가 되라고….

홍승표(계명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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