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에서

나비 한 마리가 길을 가고 있다

어린 후박나무를 지나 향나무를

지나 목단을 넘고 화단 가장자리의

쥐똥나무를 넘어 밖으로 가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와

한창인 작약꽃을 빙글빙글 돌더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혼자 훌쩍 날아올라 넘더니

비칠대는 온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 넘은 허공을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몸을 부풀린다

오규원 '나비'

불을 만든 인간은 음식을 익혀 먹는다.

후박나무는 바람과 햇볕을 날것으로 먹고, 쥐똥나무는 불을 이용할 줄 모르므로 흙과 물을 익혀먹지 못한다.

날 음식을 먹는 것은 야만이고 익혀먹는 음식문화가 고급한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오만과 편견에 의한 것이다.

개념과 은유가 익힌 음식이라면 날 음식은 사변화(思辨化) 이전의 사실과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나비가 무슨 의미냐고 묻지 말라. 그것은 곧 나비를 개념의 불로 익히는 꼴이 된다.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의 초여름 정경을 그냥 날것으로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 때 비로소 그대는 나비의 친구이다.

나비가 왜 제 몸을 허공에 부풀리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서정윤(시인.영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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