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감사의 꽃을

살다보면 개개인의 인생사가 영화나 드라마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다. 허리굽은 할머니들이나 머리에 서릿발이 내린 아주머니들이 『아이구, 내 살아온 이야기를 엮으면 책 열권으로도 모자란다...』라며 장탄식하는 모습들을 흔히 보게 된다.

인생은 한마당 연극무대라더니 우리 모두가 저마다 주연배우가 되어 혹은 길고 혹은 짧은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내용들도 제각각이어서 가슴을 따스하게 하는 휴먼 드라마도 있고, 유쾌한 로맨틱 드라마, 좌충우돌식의 슬랩스틱 코미디, 안타까운 비극물들도 만들어진다.

가슴아픈 달 6월. 영화보다 더 구구절절한 사연을 간직한 가슴들에 또다시 피눈물이 맺히고 있다. 반백년이 흘러도 여전히 눈에 밟히는 아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남편... 그리운 이의 묘비를 붙잡고 흐느끼는 백발 할머니들의 모습은 언제봐도 서럽다.

6.25의 전장에서 산화한 병사의 유해와 함께 53년만에 햇빛을 본 한 장의 흑백사진. 고등고시 응시때 제출하려고 찍은 그 사진 속에서 아버지가 합격을 빌며 사준 만년필을 멋스럽게 상의 호주머니에 꽂은 준수한 청년의 모습이 온 국민의 마음을 처연케 한다. 또 6.25 전사자가 동생에게 보낸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천만족(쪽) 부서져도 기어코 승리해 얻은 평화속에서...네가 붙잡고 섭섭히 작별하던 대신의(에) 멋들어진 웃음으로서 한 번 껄껄 웃고 싶다』는 편짓글도 우리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고등고시 합격을 꿈꾸던 나영옥 상병, 호탕한 웃음으로 가족과의 상봉을 그리던 김종석 하사는 한 점 꽃잎으로 떨어지고 말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음에야...

아메리칸 인디언 사회에서 「친구」란 「나의 슬픔을 자기 등에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들 수많은 6.25 전몰 장병들이야말로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대신 짊어지고 간 분들이다.

오늘 하루는 남은 우리 삶의 첫날. 누가 봐주든 안봐주든 우리는 오늘도 그 연극무대에 설레는 마음으로 오른다. 오늘도 살아있어 얼굴을 매만지는 첫무대」라는 일본 하이쿠(俳句) 구절처럼.

미국은 해마다 메모리얼 데이때 온 국민이 거리로 나와 꽃을 뿌리며 전몰장병을 추모한다고 한다. 6.25를 앞두고 우리 삶의 무대를 오늘도 열 수 있게 해준 그분들에게 마음으로나마 감사의 꽃을 바쳐야 겠다.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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