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개혁만 부르짖으면

세계 최초의 미술평론서라고 볼 수 있는 남제 사혁의 '고화품록(古畵品綠)'머릿말에 '화육법(畵六法)'이 있다.

그림에는 제각기 품등이 있게 마련이며 이를 평가하기 위해 객관적인 잣대가 먼저 세워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 잣대를 나름대로 6등급으로 설정하고 먼저 기운생동을 들었고 끝으로 전이모사(傳移模寫)를 들었다.

기운생동은 인위를 넘는 천부성이며 골법용필(骨法用筆)부터 전이모사까지는 노력으로 얻어지는 학습성이라고 했다.

문화의 특성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학습성'이다.

학습을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고급문화가 전승되어 갈 수 없다.

그래서 그림의 학습방법으로 옛 그림을 모법삼아 반복하여 학습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선배 작품 속에 감춰진 정신성을 헤아린 후에 그로부터 벗어나 자기 것을 창작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때 모사의 뜻은 단순히 베낀다는 뜻의 '모사(摹寫)'가 아니라 모범으로 삼는다는 '모사(模寫)'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진부한 소리 같지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온 터이다.

허나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물량적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기능주의에 길들여져 버렸다.

이제 학습을 통한 전이모사과정 따위는 생략한 채 결과에만 탐닉(耽溺)하려는 실용주의 신봉자들이 늘어가고 있다.

격조 높은 전통문화는 반드시 학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속성을 지닌다.

그런데 동시대를 경유해 온 자신의 유전적 체질만으로도 문화가 터득 되어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 경우는 문화가 마치 자신의 유전적 체질에서 저절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국인의 체질을 지녔으니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모두 한국의 사상이며 우리의 문화 일반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 전통문화를 학습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켜버린 채 외래문화를 학습하기에 여념이 없다.

거듭 말하거니와 자국의 문화라 할지라도 고급문화는 절대로 학습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어갈 수 없다.

문화는 생리적 본능이나 유전적 체질만으로 전승되는 생존의 하위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부화하려면 모체를 밀어내고 반대방향으로 나가야한다.

같은 이치로 새로운 문화의 창조는 전통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반작용의 힘으로부터 이뤄진다.

그러나 새로움의 탄생이 모체의 거부로부터 비롯된다하여 그 존재를 거역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새순이 자랄 때 모체를 밀어내며 반대방향으로 성장하지만 결국 줄기는 하늘로, 뿌리는 땅으로 뻗어 나무 본래의 전통을 유지하며 자라게 마련이다.

자식이 어버이의 품을 떠나 자라지만 효로써 근본을 삼고, 창작이 전통을 비판하며 발전하지만 미로써 동질성을 갖는다.

그래서 나는 "미래가 보고 싶으면 박물관을 찾고, 과거가 보고 싶으면 미술관을 가라"고 한다.

문화의 속성상 옛 것은 비록 낡았으나 귀중한 것이며 부모는 하마 늙었으나 막중할 수밖에 없다.

그 옛날 창작자에게 전이모사를 강조했던 뜻을 되새겨 보게 하는 대목이기도하다.

그런데 요즘, 철없는 사람들은 옛것을 부정하고 거스르는 데에만 급급한 채 개혁을 부르짖고 있으니 걱정이다.

한동안 망국병으로 좁은 땅덩어리는 정치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편을 갈라 지역노름을 일삼더니 그도 모자라서 이제는 세대간의 갈등을 조장하며 반사이익을 취해보려는 한심한 작태를 보이고 있으니 실망이다.

지금 권위주의를 타파한다는 명분 아래 도처에서 권위가 사라지고 어르신들이 실종되어가고 있다.

스승의 권위가 무너진 학교, 상사의 권위가 실추된 직장, 부모의 권위가 실종된 가정, 전통의 권위가 사라진 문화가 그렇다.

진정 문화도, 경제도, 정치도 권위주의를 타파한 참 권위가 바로 서야하겠다.

그림공부도 옛 것을 모범삼아야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어쩌다 부모, 선배의 노고와 권위를 헤아리기는커녕 나이 들었다고 투표권마저 앗아가려 했던지….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런 철없는 사람들 때문에 개혁이란 미명아래 질서가 무너지고 권위가 실종하니 어른도, 전통도, 문화, 역사도 제 자리 찾기가 요원(遙遠)할까 두렵다.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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