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녀교육 상담실-"학교숙제할 시간없어요"

상담자가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K군은 꾸중해도 숙제를 해 오지 않는다"고 수학 선생님이 말을 건네왔다.

다른 선생님의 반응도 같았다.

하지만 상담자의 시간에는 늘 숙제를 해왔으므로 그 말은 의외였다.

K군과 마주 앉았다.

K군은 얼굴도 수려했고 용모도 단정했다.

작고 야윈 몸매에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는 겸연쩍은 듯 씩 웃었다.

하지만 할 테면 해 보라는 듯 몸을 뒤로 재치고는 약간은 저항적인 자세를 취했다.

긴장해서인지 말도 다소 더듬거렸다.

K군에게 다른 교과 시간에 숙제를 해 오지 않는 것이 사실인지 물었다.

K군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갑자기 풀이 죽어버렸다.

"학교 숙제할 시간이 없어요".

K군에게 하루의 일과를 물었다.

그랬더니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서 영어 회화 학원에 갔다와 간단히 집에서 아침을 먹고 등교해 수업을 듣는다.

방과 후에는 다시 학원에 가서 밤 늦게까지 수업을 받는데 학원에서 내는 숙제가 엄청나 학교 숙제는 엄두도 못낸다는 것이었다.

큰 눈을 휑하니 뜨고는 "학교 숙제는 안 해 가도 맞지 않지만 학원 숙제는 안 해 가면 '꽥'이예요"라면서 손을 목에 갖다대기까지 했다.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도 답답하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만 있으면 킥보드를 타고 집 앞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내달려 담장으로 돌진한다고 했다.

자학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팔꿈치 등에는 성한 곳이 없었다.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물었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간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간단히 얘기했다.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설마 내 아이가 그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말썽을 부리지 않으니 학교와 학원을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학교 생활이 궁금해 말을 걸어도 얘기를 잘 하지 않는 바람에 더욱 모를 수밖에 없었다"며 속상해했다.

이런게 특히 남자 아이들의 특징이랄까? 남학생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선생님이 부탁하는 일조차도 부모님께 잘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말문을 열어갈 것인가…'.

어머니는 당장 학원을 그만 두게 하겠다고 했다.

이후 K군은 표정이 밝아졌다.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공부라는 짐에 짓눌려 친구들과도 멀어져 있었던 것이다.

김남옥(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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