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조용하다.
서울이나 부산을 잠깐 다녀온 후 동대구 역을 나서면 푸근함을 넘어 그 조용함에 놀란다.
부둣가를 향하는 컨테이너가 쉴 새 없이 오가는 부산과 사람들로 북적대는 서울이 갖고 있는 도시의 역동성과 활기를 대구에서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도시 발전의 지표랄 수 있는 인구 추이나 지역 내 총생산(GRDP)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밖으로 보여 지는 대구의 모습은 '변화'보다는 '정지'된 도시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수 십 년 째 그대로인 도심 한복판의 건물과 지친 시민들의 얼굴에서 그리고 상인들의 무료한 표정에서 도시의 역동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최근에는 행정 수도 이전을 둘러싼 중부지역의 들썩임이 이곳을 더욱 활기 잃은 도시로 비쳐지게 한다.
이처럼 조용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대구시는 새로운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밀라노프로젝트보다 더 많은 예산을 들여 대구를 문화산업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대구를 대표할 세계적인 축제를 만든다는 소식도 '먹고 사는 일' 에 지친 이곳 시민에게는 공허한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사실 대구에서 '발전' 혹은 '변화' '희망'이라는 말은 반쯤 사어(死語)가 돼가고 있다.
10여 년째 지역 내 총생산은 꼴찌이며 빚 때문에 동반 자살하는 가족이 이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답답하다며 대구를 떠나고 대구에는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대구의 시계는 몇 시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태양이 중천을 넘어 기울기 시작하는 석양의 도시인가. 아니면 아직도 풍요로워지지 않았으며 일을 더 할 수 있는 발전의 여지가 많은 도시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게 되는 것이다.
1995년 경제가 쇄락해 질 무렵 일본에서는 ' 일본은 몇 시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 당시 일본은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고 미국의 경쟁력회복과 중국의 무서운 도전에 휘말려 곧 퇴색하리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경제발전은 한계를 보였으며 사회는 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쾌락이 나라를 좀 먹고 있던 때였다.
아사히(朝日)신문이 송년호 사설에서 " 일본은 하루의 시간으로 비유하면 태양이 중천을 넘어 햇살도 약해지기 시작한 오후 3시의 나라"라고 지적한 것이 논쟁의 시작이었다.
이 논쟁은 의회로 옮겨져 총리에게 '일본은 지금 몇 살, 몇 시의 나라라고 생각하느냐'는 공개질문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런 방법으로라도 일본은 쇄락해가는 나라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길을 찾아보려 했던 것이다.
이 질문을 그대로 옮겨 본다면 대구의 시계는 지금 몇 시일까. 대구 진입로에 결려있는 '유교의 도시'라는 큼지막한 안내판은 대구가 지향하고 있는 시간을 되묻게 만든다.
우리의 옛것을 지키고 선비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표지판이지만 왠지 이 도시의 시계바늘은 과거에 고정돼 있음을 짙게 풍긴다.
도시의 시간을 되돌려줄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대구는 늙은 도시로 변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대구의 노령화 지수는 28%로 생산도시인 울산의 두 배이며 인천 대전보다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도심에는 '황제'니 '황실'이니 '여왕'이나 '왕비'등 옛것을 떠올리는 간판이 여전히 눈에 띈다.
이를 두고 타 지역 사람들은 아직도 대구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기도 한다.
왜 성(城)을 뜻하는 'palace'가 서울에서는 원음에 가까운 '팰리스'(타워팰리스)로 불리는데 반해 대구는 '팔레스'인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팰리스와 팔레스의 차이만큼 대구와 서울의 세계화 차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자기비하일까. 대구를 찾는 외국인도 지난해 20% 이상 감소했다.
대구는 점차 변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답답한 도시로, 의리하나는 끝내주지만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 배척해버리는 도시로, 열려있기보다는 닫혀있는 도시로, 한번 떠나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도시, 그런 도시로 굳어가고 있다.
과연 대구는 지금 몇 시인가.
김순재(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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