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수필' 피천득 외 지음
보안법으로 밀고 당길 때 한 방 터뜨렸다. 우왕좌왕. 핵실험 같다고 했다. 그건 아니라고도 했다. 십리에 달하는 버섯구름. 엄청난 폭발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그것마저 불분명하다고 했다. 버섯구름은 어느새 특이한 자연구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뻥튀기하는 언론이 문제라고 했다. 그뿐이다. 이미 언제 그랬냐는 듯 벌써 손바닥을 털 자세다. 궁금한 너와 나만 속이 까맣게 탄다. 껍데기들. 빨리 털어버리고야 싶겠지. 속이 비었다. 겉만 번지르하다. 차관이 떡값 100만원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아직도 총선 떡고물로 야단북새통이다.
겉으로야 얼마나 번듯한 저명인사들인가. 말썽의 전현직의원들. 그들은 국민들을 껍데기로 보고 있다. 국민들도 그들을 껍데기로 보는데도 말이다. 서로 껍데기라며 얕잡아보는 나라에 곡식 알맹이가 야물게 영글리가 없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전문)
껍데기들은 솔직히 그럴수록 쉽게 물러서지 않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오히려 더 과감히 점잖 빼고 뒷짐진다. 영원히 싫다며 부정하던 그 기성세대에 이미 그들이 빠져든 것도 알리 없다. 차라리 알 바 아니라는 투다. 원로들의 발언들을 기관총알처럼 반박한다. 그러면서 임금의 말은 하늘같이 받들며 새겨 듣는다.
"임금은 두 눈으로 한 나라를 보지만 한 나라는 만인의 눈으로 임금을 본다(人主以二目視一國, 一國以萬目視人主)"는 제나라 선왕의 말도 아마 한 귀로 들었다면 다른 한 귀로 흘릴 것이 뻔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 '노'라고 말하는 신하가 없을리 없지 않은가. 입 열기를 좋아하고 귀 열기를 싫어하는 지도자에게는 바른말하는 신하가 없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을게다.
민초들의 답답한 가슴들. 이럴 때 사설시조 한 수 읊자.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창(窓) 내고자 창을 내고자,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자/ 들장지 열장지 고무장지 세살장지, 암돌쩌귀 수톨쩌귀, 쌍배목 외걸쇠를, 크나큰 장도리로 똑딱똑딱 박아 이내 가슴 창 내고자,/ 임 그려 하 답답할 제면 여닫어나 볼까 하노라./
'한국의 명수필'이라는 책이 있다. 수필가 손광성씨가 엮은 것으로 쟁쟁한 현대 한국수필문학사에 빛날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교과서에 실린 것도 많고 엮은이가 고심 끝에 고른 것 합해 60여편 넘게 담겼다.
피천득의 '인연',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민태원의 '청춘예찬' 등 아직도 가슴 뭉클하며 입안 가득한 향내나는 글들이 소롯이 담겨 세대를 불문하고 이 가을 초입에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요즘같이 하루하루 힘든 삶들이 이로 인해 다소나마 위안이 충분히 될까 해서다.
"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다.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흥미를 주지만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이라는 제목의 수필이다.
이만하면 수필이 무엇인가는 독자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얼마나 이런 대목에 가슴 쿵얼거렸는가. 이는 지금 우리들이 온갖 폭발에 쿵얼거리는 가슴과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어느틈에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가슴들을 잃고 그저 안도하기에 바쁜 일정들로 꽉 짜여진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안도하기 위해 수필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여유쯤 누리고 살아야 할 권리도 우리에게는 있다. 비록 위정자들이 아무리 주려야 줄 수 없는 그런 여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면 곳곳에 가득한 인생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사회,한 시대의 생활양식의 변천과 더불어 그 사회, 그 시대의 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옛날 길들에 마음이 끌리고 유혹을 느낀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낭만적 향수나 진보에 대한 거부심에 기인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남들과의 조화로운 만남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박이문의 '길'이라는 글 마지막 부분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어도 우리의 길이 환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보수나 진보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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