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범어동 풍경-(9)판결에 얽힌 얘기

며칠전 대구고·지법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얼마전 연쇄살인범이 예전에 무거운 양형(量刑)에 충격을 받고 출감한 후 마구 살인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판사들이 양형에 좀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그 의원의 말이 아니더라도, 판사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피고인에 대한 형량을 정할 때라고 합니다

"내 자신이 신(神)도 아닌데 한 인간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에 큰 부담을 갖게 됩니다.

괴로울 때가 많아요." 판사들은 이때 고심에 고심을 거듭합니다.

그렇지만 판사들의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양형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조계에서 회자하는 말중에 '꾸중을 잘하는 판사가 판결에는 관대하다'는 것이 있지요. 모든 판사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판사의 성격이나 법률적 관점이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일 겁니다.

재판 중에 피고인에게 이런 저런 꾸지람을 하는 판사들을 가끔씩 보게 됩니다.

"왜 그랬어?" "아직도 잘못한지 모르겠어?" "마음의 준비를 해…."

어떤 때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피고인에게 따끔한 충고를 늘어놓는 판사들도 있지요. 꾸지람을 듣는 피고인도 기분이 좋을리 없지만, 대놓고 말을 할 수도 없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게 보통이지요.

그런 분들은 판결을 내릴 때 예상보다 가벼운 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재판정에서 단단히 기합을 준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할까요? 그렇지 않다면 재판정에서 훈계를 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일 수 있겠지요.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습니다.

예의바르고 정중한 판사가 더 무섭다(?)는 말이겠지요.

이럴 경우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원칙에 충실한 재판을 진행하지요. 검사가 신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피고인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얘기까지 친절하게 들려줍니다.

나중에 선고를 내릴 때면 추상같은 처벌에 모두가 깜짝 놀라고 맙니다.

판사의 친절에 마음을 놓았던 피고인이 무척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도소 벽에는 판사들에 대한 욕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가 좋아하는 판사 중에도 이런 분이 있습니다.

재판을 지켜보는 기자 입장에서는 '정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존경의 염(念)을 갖고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괴로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판사도 고독한 직업이라고 표현한다면 맞는 말일까요?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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