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대입개선이 만병통치약?

얼마 전 우연히 한 공공도서관 열람실을 지나다가 특이한 책상을 발견했다.

취업이나 시험, 어학 관련 서적들이 놓여 있는 대부분의 책상과 달리 수학 정석과 대학수학, 미분, 적분 등의 책들이 널려 있었다.

호기심에 한참을 기다려 만난 책상의 주인은 유명 대학 공대를 1년 다니다 휴학하고 1년 가까이 혼자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연유를 물었더니,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고 어렵사리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고교 공부부터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대학입시제도에 맞춰 열심히 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일류 공학도가 될 준비는 전혀 못 한 것 같아요. 대학 입학이 뭔지, 허송세월한 거죠."

최근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고교등급제 문제에서부터 숱하게 되풀이돼온 교육계의 논란들을 되짚어 보면 그의 탄식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온 국민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대학입시에 집중되고, 교육부의 가장 큰 일이 대학입시 제도를 바꾸는 데 맞춰지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면서 교육정책이 사회 변화에 극도로 무감각하고, 여기에 대한 문제 제기가 금기시되는 나라도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학입시 제도가 10여 차례 바뀐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 교육에서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는지 찾기가 어렵다.

학교 운영 체제, 교원 제도, 교과서 제작, 지방교육 구조 등 주요 부분에서 엄청난 경직성을 보이고 있다.

말 많은 평준화 문제도 1969년 중학교, 1974년 고교에 도입된 이후 개선이나 보완은 거의 않은 채 30년을 보냈다.

땜질식 대책만 내놓다 보니 특수목적고, 자립형 사립고 등의 애물단지에 이어 고교등급제라는 폭탄까지 만들었다.

교원 평가 역시 최근에야 논의가 제대로 시작되는가 싶지만 지금처럼 교원단체의 목소리가 높은 분위기에선 언제쯤이나 사회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평가제도가 정착될 지 알 길이 없다.

이런 낡은 틀 속에 있는 우리 교육이 과연 미래 사회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가고, 세계적인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재 양성'이라는 대한민국의 기본 생존 전략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은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공계 졸업생 비율은 세계 1위이지만 취업난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든지, 미래 핵심 기술이 미국을 100으로 할 때 한국은 65에 그친다든지,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2.1년에 불과하다든지….

고교등급제로 떠들썩한 마당에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시급하다며 2008학년도 대학입시 제도를 조만간 발표한다고 한다.

일부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들은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며 정면으로 맞설 태세다.

양측의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는 국민 모두가 대학입시 제도만 바꾸면 교육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풀어낼 수 있다는 헛된 기대는 떨쳐야 한다.

교육 정책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고,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접근 없이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교육이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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