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가족해체, 파산…. 네 식구의 가장 유호열(46)씨의 가족사 10년에서 지난 한 해 만큼 힘든 때가 또 있었을까. 빚에 쫓긴 아내의 가출, 개인파산은 죽음을 생각할 만큼 참담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해가 바뀌면서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다. 부인 박희옥(45)씨가 만 5개월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나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더 잃을 게 없는 부부는 다시 '힘'을 내고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과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되씹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박씨는 선우(8), 선광(7) 형제를 돌보며 일주일에 사나흘씩 식당일을 하고 있다. 유씨도 자동차부품 조립일을 시작했다.
유씨 부부는 10년 전 늦깎이 결혼을 하고 달서구 감삼동에서 막창 포장마차를 운영했었다. 연년생으로 선우, 선광이가 태어나면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다. 그런 부부에게도 1998년 외환위기는 날벼락이었다. 포장마차 전세 자리가 경매로 넘어가 순식간에 보금자리를 잃었다. 권리금 700만 원을 한푼도 되돌려 받지 못했다.
부부는 지금의 상인 비둘기아파트에서 10평짜리 영구임대를 얻었지만 빚이 빚을 낳는 무서운 악순환에 빠져 들었다. 포장마차 권리금과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갚기 위해 카드 빚으로 카드 빚을 막는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초 보증마저 잘못 서 불어난 빚은 1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
그때부터 악몽같은 빚독촉의 시작이었다. 부인은 빚쟁이 성화에 견디다 못해 결국 가출했다. 온갖 식당을 전전하면서 한 데서 새우잠을 자느라 몸까지 상했다. 힘겨운 가출생활에서 박씨는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남편과 두 아들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빚쟁이들을 찾아가 눈물로 호소하기를 수차례, 마침내 엄마는 평생 함께 짐을 짊어질 각오로 가족에게 돌아왔다.
가족해체를 딛고 5개월만에 재결합한 유씨 부부는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왼쪽다리를 못쓰는 장애인이어서 일거리 찾기가 쉽지 없었던 유씨는 어렵게 휴대전화와 자동차 부품조립 부업을 구했다. 박씨도 저녁부터 새벽까지 하루 5시간씩 시간당 3천원짜리 주방보조일을 하고 있다.
아직은 순탄치 않다. 경기 불황으로 휴대전화조립 일거리가 떨어져 시작한 자동차부품 조립도 신통찮다. 유씨는 "한달을 일해도 30만 원을 벌기가 힘들다"고 했다. 박씨도 "식당 경기가 좋지 않아 일이 줄고 있다"며 "월 5만 원인 임대료가 수개월째 밀렸고 재계약금 76만 원도 아직 구하지 못했다"고 불안해 했다. 유씨는 지난달 대구지방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한 상태. 은행 빚이라도 면책받으면 그나마 살 길이 보일 것 같아서다.
부부는 '그래도 좌절하지 않는다'고 다짐한다. 헤어져 있었던 지난 5개월을 떠올리면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서로 힘이다. 현재 부부의 최우선 목표는 옷수선 가게를 여는 것. 유씨는 결혼 전 양복점과 섬유공장에서 10여년간 일한 경험을 되살리고 싶다. 당뇨를 앓고 있는 박씨는 몸이 좋아지면 월 90~100만 원짜리 식당일을 찾아볼 계획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 가족에겐 집이라도 있잖아요. 이 세상엔 우리보다 못한 이웃들도 많습니다. 꼭 다시 일어설 날이 분명 올 거예요."
부부는 "두아들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새 해에는 꼭 '돈'을 벌고 싶다"고 소망했다.
기획탐사팀=이종규·이상준기자
사진설명 : 다시 엄마를 찾은 유씨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다. 유씨 가족의 새해 소망은 부지런히 돈을 모아 옷 수선집을 여는 것이다. 박노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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