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이철수. 오윤의 뒤를 이어 1980년대엔 민중판화가로 이름을 날린 그는 1990년대 들어 '일상'과 '불교'를 화두로 판화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밥 한그릇의 행복 물 한그릇의 기쁨'(삼인 펴냄)은 이씨가 2년여간 쓴 엽서들의 모음이다. 현재 충북 제천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씨의 엽서에는 사계절의 일상과 자연에 대한 겸손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이씨는 '많을수록 좋다'는 현대인에게 소박한 삶에 대한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좋은 시를 위해서, 조용한 영혼을 위해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나를 조금 덜어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읊조리는가 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가난한 삶을 선택하고 그 가난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씨의 엽서에 녹아있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애잔한 시선과 노숙자 등 마음둘 곳 없는 현대인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은 엽서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짧은 엽서글이지만 제법 큰 무게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글이 육화(肉化)된 것이기 때문이다. 비바람에 쓰러진 옥수수대를 보면서, 올콩을 거두면서, 참깨를 심으면서 건져낸 일상의 언어들이 생생하다.
빽빽하게 채워진 엽서를 읽다보면 단아하고 선(禪)적인 그림에다 한두마디 같이 새겨내던 이씨가 좀 더 하고싶은 말이 많아진 것을 눈치챌 수 있다. 2005년 새해 벽두, 이씨는 '절망, 그 절반은 바깥세상에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 마음속에 희망으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당신도 엽서 한 장 써보세요'라는 심정으로 엽서를 써왔다는 저자의 의도대로, 저자의 단아한 손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엽서 한 장 쓰고픈 마음이 동하게 된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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