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교 돌아가 공부하고 싶어요"

거리의 아이들-(하)쉼터로 찾아든 아이들

부산이 고향인 백환이(가명·18)양은 고교 2학년이던 지난해 5월 집을 뛰쳐나왔다 "알코올 중독인 아빠는 감정변화가 심하고 내 말을 믿지 않았어요. 날 밧줄로 묶어 놓고 각목으로 온몸을 때리기도 했죠." 환이의 아버지는 학교에 찾아가 친구들 앞에서 환이를 때린 적도 있었다.

그나마 환이가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티는 것은 어머니 때문. 함께 아버지에게 매맞는 신세였지만 환이를 이해하고 다독여줬다. 남동생도 환이에겐 유일한 희망이다.

환이는 나이를 속이고 막창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기도 했고 전단지 배부, 식당 서빙 등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봤다. 환이는 성매매에 빠지진 않았다. 땀 흘리며 돈 버는 것이 더 좋다는 환이의 장래희망은 헤어디자이너. 학교에 돌아가 공부를 마친 뒤 돈을 벌어 어머니를 모시고 싶다고 했다.

가출청소년 쉼터를 들락날락한 지 벌써 7년째라는 이진석(가명·19)군. 초등학교 6학년때 부모가 이혼한 뒤 집을 나왔다. "중학교 1학년때 친구와 함께 가출했어요. 다행히 친구 부모님이 저를 챙겨줬고, 쉼터로 연락해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쉼터를 뛰쳐나갔다.

동생과 함께 가출한 진석이는 신문배달, 앵벌이 등 갖은 고생을 했고 아파트 옥상, 찜질방, PC방을 전전했다. 진석이는 14살 때 동네 구멍가게를 털어 전과자가 된 뒤 소년원을 들락거리는 생활을 반복했다. 16살에 조직폭력에 가담했지만 그곳 생활은 끔찍했다.

"그곳이 아니면 당장 굶어야 할 처지였기에 살기 위해 붙어있었어요. 조직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지만 폭력, 살인미수 등의 죄를 저질러 광주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 후 작년 말 출소하고 바로 이곳을 찾았어요."

진석이는 복역 중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동생 앞에 떳떳한 형이 되고 싶었다. 교도소에서 자동차판금, 컴퓨터 그래픽, 중장비 기술을 배운 것도 그 때문이다. 동생 이야기를 하며 진석이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떨궜다. 환이와 진석이 처럼 대구 청소년쉼터에 머무는 아이는 현재 11명. 쉼터의 백경록씨는 장기간 머무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저소득층 가정이 해체되면서 아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는데 IMF 직후 늘었다가 점차 줄어들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 그나마 쉼터로 찾아드는 아이들은 폭력과 성매매의 유혹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어 행운아라고 했다.

백씨는 "왜 아이들이 가출할 수밖에 없었을까에 초점을 맞춰야지 미리 범죄예비군으로 분류해놓고 삐딱하게 보는 시선을 버려야 한다"며 "사회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언제 범죄자가 되어 돌아올 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중3때 가출해 2년만인 2003년 집으로 돌아간 이선주(19)양은 지난해 4월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치고 올해 전문대에 합격했다. 선주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주 대립하는 바람에 가출을 결심했었다. 학교 성적이 떨어지고 난 뒤에는 아예 공부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돌아다니며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유일한 탈출로는 가출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여자아이들은 1년 정도 밖에서 생활하면 원조교제를 해봤거나 할 마음이 생겨요. 주위의 유혹도 많아요."

선주는 현재 노동부의 직장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따로 상담교육을 받고 쉼터에서 또래 상담을 할 예정이다.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언젠가 후회할텐데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들이 나쁜게 아니라 환경이 나빴거든요." 가톨릭여자기술원 이명식 원장은 "이 곳에 머무는 아이들의 98%가 편부모 또는 이혼가정에서 자랐다"고 했다. 일반 쉼터와 달리 이곳에선 홈패션, 컴퓨터, 미용 등 기술교육과 함께 도예, 한문 강좌 등 인성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불씨를 남겨놓고 위에서 타고 있는 불만 끄고 있는 것이 지금의 가출 청소년 대책입니다.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라도 청소년기에는 치유가 가능하지만 조금만 늦으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사랑받을 자격과 권리를 가진 엄연한 우리의 가족입니다. "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사진설명 : 집을 뛰쳐나온 뒤 배회하다가 청소년쉼터에 찾아든 아이들은 그나마 행운아인 셈이다. 가톨릭여자기술원에서 미용기술을 배우며 재활의지를 다지고 있는 아이들.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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