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까막눈 할머니의 사랑

대구 남산고 윤가영 양의 성장 이야기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것은 더 해야 하고, 어떤 것은 덜 해야 할까. 공부를 잘 하면서 마음도 넉넉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식 가진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고민거리이고 정답을 알고 싶은 물음들이다. 하지만 자녀 교육에 대한 책을 아무리 읽고, 온갖 특강을 다 들어 봐도 속 시원한 답은 찾기 힘들다. 이럴 땐 앞 세대의 삶에 주목해 보자.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형편에서도 그들은 꿋꿋이 다음 세대의 주역들을 길러냈다. 고리타분하다고 외면할 게 아니다. 그 속에는 인간의 역사를 지탱해온 지혜와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어떤 이론이나 방법론보다 한층 과학적이고 효율적이다.

◇영광을 할머니께

대구지역 중·고교 졸업식이 열린 지난 15일 오전 남산고 졸업식장. 전체 수석으로 졸업장을 받은 윤가영(19) 양은 졸업장과 꽃다발을 할머니(91) 손에 꼭 쥐어주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문맹, 9남매를 길렀고 손자손녀가 23명이나 되지만 자신의 무식이 흉잡힐까 학교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졸업식 참석에 손녀보다 더 설레 하던….

할머니는 엄마 아빠보다 더 가까운 이름이다. 교직에 있는 부모 대신 태어날 때부터 자신과 오빠를 건사했다. 밥 먹을 때, 잠 잘 때, 아플 때나 힘들어 할 때 할머니는 언제나 옆에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자랐고, 할머니의 삶을 들으며 인생을 그렸다. 할머니의 칭찬과 격려, 말없는 기원은 성장에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그런 음덕인가. 서울대 사회과학대 지역균형 선발 면접시험에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과 대책'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추가질문까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만족스런 답변을 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할머니는 제가 시험을 잘 치도록 빌고 계셨을 거예요. 오늘의 제가 있도록 해 준 건 바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가르침은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박사까지 딴 부모들도 아이 문제라면 책이나 잡지를 찾고, 관련 TV 프로그램에 귀를 기울이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진땀을 흘린다. 숟가락을 겨우 쥘 때 글자를 가르치고, 영어 학원에 보내며 호들갑을 떤다.

문맹인 할머니는 기억력 하나로 아이들을 길렀다. 오빠(서울대 의대 재학)와 가영이는 취학 전에 문자 교육을 받는 대신 무수한 구전 동화를 들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왈강달강 서울가서 밤을 한 되 사왔는데…'라거나 '불매 불매 불매야 이 불매가 누 불매고…' 같은 노래를 배웠다.

모든 대화는 사투리였다. 남매는 초등학교에 입학해 받아쓰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무, 부엌, 구멍 같은 단어를 부시, 부섴, 궁강 등으로 알았던 것. 문자를 늦게 배운 대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직관의 힘을 키우는 일은 자연스레 몸에 뱄다. 그 힘은 자라면서 논리와 이해력, 창의력과 탐구력을 배양하는 데 소중한 원천으로 작용했다.

지금도 집에서는 온 식구가 완전한 사투리를 쓴다. 대구지역 방언을 온전히 보유한 할머니를 우리 집 무형문화재 1호라고 하는 아빠, 할머니의 사투리보다 소중한 문화유산은 없다며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라도 더 배우라고 하는 엄마 때문이다.

할머니의 문맹은 손자들에겐 축복이 됐다. 스스로를 무식하다고 여긴 할머니는 손자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면 누구보다 기뻐했고, 조그마한 변화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못을 할 때도 힘들어 할 때도 말보다 인자한 웃음과 따뜻한 손길, 부드러운 포옹이 먼저였다. 삶과 경험을 통해 칭찬과 격려가 최고의 자극제이자 정신적 양식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손녀의 배움은

할머니는 가영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부터 거동이 힘들어졌다. 그때부터 역할이 바뀌었다. 혼자만의 공간이 목마른 사춘기였지만 가영이는 변함없이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다. 잔심부름을 하고, 대·소변을 가려 드리려면 항상 옆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영이를 위한 방은 고3이 끝날 때까지 비어 있었다.

고3이 돼서도 학교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오후 6시면 집으로 와 할머니 수발을 들며 공부했다. 자기 전에는 할머니를 주물러 드렸고 잘 때는 할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긴 수험생활의 어려움을 할머니와 함께 이겨낸 것이다.

2월 말이면 서울로 가야 하는 가영이는 걱정이 많다. 엄마 아빠가 안 계시는 동안 할머니가 너무 심심할 것이고, 혹시 아무도 없을 때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될지 모르지만 날마다 전화를 드리고, 자주 내려오도록 노력해야죠."

손녀의 다짐에 할머니는 그저 빙긋 웃는다. 그 웃음이 최고의 자녀 교육 노하우이자 결정체로 보였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조손이 맞잡은 손은 졸업식장으로 불어드는 쌀쌀한 바람을 봄 기운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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