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킹코브라를 찾아서

인도 서해안의 중서부 도시 트리반드럼으로부터 여행을 시작한 한 사내. 그 사내의 손에는 사진기 하나와 막대기 외에는 들려 있질 않다.

부처가 길을 가다 지쳐 바위 위에 잠들자 뱀이 보호했으며 이에 부처가 감사의 표시로 코브라의 뒷목에 손을 갖다 댔다는 설화가 있는, 뱀을 숭배하는 고장으로 유명한 트리반드럼으로부터 그는 뱀의 서식지가 있는 해안을 따라 주욱 헤매는 탐험을 시작한다.

그는 낯선 정글들을 헤맨다.

킹코브라를 찾아서. 어떤 정글에서는 노숙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정글에서는 높이 망루를 지어놓고 숲전체를 살피며 일주일씩 살기도 한다.

그러다 아무 소득도 없이 그곳을 떠나려는 마지막 날, 그는 대나무 잎들이 소복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한다.

그 대나무 잎들은 알을 낳으려고 킹코브라가 모아놓은 것일 것이었다.

그 남자는 환희에 차서 걸음을 멈춘다.

만약 물기라도 하면 장정 스물쯤은 거뜬히 죽일 수 있다고 하는 독사 킹코브라가 나타났다.

그 남자는 살몃살몃 가까이 간다.

그리고 킹코브라의 머리에 살짝 손을 얹는다.

그의 숨찬 목소리. "저는 킹코브라가 제 앞에 서는 꿈을 늘 꾸어왔어요." 그리고 그는 킹코브라가 눈치채지 못하게 카메라를 집어들고 셔터를 눌러댄다.

"누구나 살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지요. 내게 그 일이란 킹코브라의 머리에 직접 손을 대보는 것이었지요. 그 일이 실현되다니!" 그의 이름은 오스틴 스티븐스. 파충류학자, 그 중에서도 20년 넘게 뱀만을 연구한 뱀전문 학자이며, 사진작가, 탐험가. 어떤 다큐멘터리이다.

하긴 세상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지만, 이렇게 독사의 머리에 손을 얹어보는, 아무도 꾸지 못할 꿈을 꾸며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쨌든 꿈을 꾼다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에게는 오늘,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 중 많은 것이 미국식 평가의 시스템과 조선조의 정신 사이에 있는 어떤 것들이다.

그것들은 일종의 정신적 장애가 되어 우리를 균형잡히지 못하게 한다.

그 중 몇가지만 예를 들면 값에 대한 오해, 전문성에 대한 오해, 세계성-따라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오해 등이다.

그 중에서도 '값'에 대한 이야기만을 해보자. 이를테면 수천만 원의 값에 대해서는 별로 감각이 없으나, 콩나물 값에 대해서는 악착같이 깎는 것, 그 어떤 것도 한 푼의 값이 들지 않는 것은 없는 자본주의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다 잘 알고 있으나, 어떤 정신적인 것들, 예를 들면 글값이라든가 등등, 말값(인터뷰 같은 것 등등)과 같은, 그 결과가 얼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돈을 한없이 아끼려는 것뿐 아니라 돈을 '우습게 알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돈을 돌같이 보아야 한다'는 식의 조선조적인 가치관 속에 100층짜리 빌딩의 청사진이 있다고 할까. 그리고 그런 '분열된 정신'은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그림만 보고 분양하게 한다.

수십대 일의 청약전쟁이 그림과 모델 하우스 앞에서 일어난다.

정상적인 논리로 생각한다면 말이 안되는 것들이 말이 된다.

그러나 아무튼 이런 분열에서 똑바로 서서 걸어가는 길은 꿈을 갖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오늘의 전문성이란 바로 그 꿈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그리고 그 전문성이라는 꿈은 결국 일생을 끌고 가는 '일 하나'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황우석 박사처럼. 어린시절 지독한 가난 속에서 소와 친하게 살았던 사람이 황우석 박사이다.

그는 그때 소에 극진한 애정을 느끼고 소와 관계된 그 무엇인가를 하리라 마음먹었었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수의과대학으로 가게 했고, 그 열악한 연구환경 속에서도 끝없는 실험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세계적인 학자라는 오늘에 이르게 했다.

꿈이다.

믿음이 만드는 꿈은 길을 만든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뚫는다.

화장을 잘 한 이, 성형을 성공적으로 한 이가 아름다운 게 아니라, '자기의 날개를 열심히 젓는 이', 아름답다.

그런 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사회 또한 아름답고 건강할 것이다.

당신은 무슨 꿈이 있는가. 어떤 '킹코브라'를 가지고 있는가. '소 한 마리'가 가슴에 살고 있는가.강은교 시인·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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