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체가 의지까지 붙들어 맬 수 없어"

1급 뇌성마비 장애인 사장 장윤혁씨 모자

"이 아이는 치료가 불가능한 1급 뇌성마비 장애입니다." 아들이 겨우 오른팔 부위만 살아있는 1급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판정을 받던 그날 이후 엄마 박상희(55. 시인)씨의 인생도전은 시작됐다. 그로부터 30여년. 온 방을 기어다닐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신체결함을 타고난 아들 장윤혁(32, 경북 왜관읍)씨는 어엿한 컴퓨터 가게의 사장일뿐만 아니라 창공을 가르는 새들처럼 영혼이 자유롭고 순수하다.

◆장애 있다고 인생 포기할 순 없어

"영화 '말아톤'에 나오는 초원이 어머니 이상이죠. 30여년간 한결같이 뒷바라지 해준 엄마와 가족 이웃 덕분에 사장도 되었구요. 지금도 저는 비장애인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장애는 현실적으로 불편할 뿐, 나의 노력과 생각까지 멈추고 붙들어맬 수는 없어요."

지난 24일 오전 9시, 왜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읍내 5거리 버스정류장 부근의 점포들은 이른 시간이어서 문이 닫겨 있는데 한 가게만 환하게 불이 커져있다. 바로 윤혁씨는 생활터전이자 생업현장인 컴퓨터 가게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말쑥한 와이셔츠 차림으로 전동휠체어에 앉은 윤혁씨가 엄마와 나란히 환하게 웃는다. "윤혁이는 하루 12시간 이상 전동휠체어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하니 너무 일찍 앉는 것은 무리예요. 그런데도 기자님이 오신다니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기다렸어요."

◆대학서 장애인복지 공부하는 게 꿈

윤혁씨는 서서 태어나는 바람에 뇌를 다쳤다. 장애아를 낳은 죄스런 마음에, 사는게 힘들어서 엄마는 아들과 함께 죽고싶은 마음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손자 사랑이 지극하셨던 시아버지는 "내 죽기전에 이놈 고쳐놓고 간다"며 좋다면 다 데리고 다니셨다. 허사였다. 혁이가 학교 갈 때가 되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입학을 반대했다. 다음해에 또 학교문을 두드렸다. 완고한 교장이 "장애인 시설이 없고,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며 또다시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때 연세드신 교사(김형기) 한분이 "내가 책임지겠다"며 담임을 자청했다. 코흘리개 친구들도 선생님을 따라 "윤혁이를 돕겠다"고 도우미로 나섰다. 이후 학교에서도 윤혁이와 그 친구들은 고학년이 되어도 위로 올리지 않고 1층에 6년동안 두었다. 지난해 한달만에 중졸 자격증을 거머쥔 윤혁씨는 "대학에서 장애인복지를 공부하는게 꿈"이라며 고졸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통신이 보내준 천사 혜정이 누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윤혁이는 갈데가 없어졌다. 집안만 기어다니니 불만은 커져갔고, 말수는 줄어들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느냐 싶었어요." 어느날, 농촌지도차 다니던 공무원을 통해 전화국에서 통신단말기를 얻게 됐다.

타자를 익혀 통신을 하던 윤혁씨는 뜻하지 않게 '천사'를 만났다.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오른손으로 하루종일 타자친 한두줄의 통신편지를 본 누나(이혜정 씨, 서울거주)는 긴 답장을 보내왔다. 약사였던 누나는 컴퓨터를 배우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권했다. 그러나 20년전 컴퓨터는 대당 230만원(당시 시골 인건비 3천원)으로 시골에서는 가질 꿈도 못꿨다. 그러자 어느날 386 최신 기종을 보내오고, 관련 지식을 가르쳐주었다. 동토에 날려간 민들레 씨앗처럼 윤혁이의 얼어붙은 마음에 희망의 씨앗이 심어졌다.

◆모자의 세상살이 컴퓨터 가게서 싹 터

초등만 나와 영어를 전혀 모르던 혁이는 도스용 프로그램을 익히느라 힘들어 점점 말라깽이가 되었고 가만히 있어도 코피를 한줌씩 쏟았다. 컴퓨터에 앉았다가 뒤로 넘어져 숨도 못쉬던 나날위에 눈물이 겹쳐졌다. 지독한 싸움이 계속되던 어느날 부터인가 동네에서 혁이에게 컴퓨터를 배우러오는 발길들이 늘었다. 왜관읍 **한의원 정재우원장이 엄마에게 윤혁이를 세상으로 데려나오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여동생 남편(김영붕씨)의 통신가게 한켠을 내주었다.

윤혁씨 모자의 세상살이가 시작됐다. 그러던 어느날 컴퓨터 기술을 인정받아 장애인 창업자금을 지원받게 됐다. 가게에 들리는 고객은 두갈래였다. 매장에 들어서면서 "병신이구먼"하고 돌아가는 사람과 "더 자네를 믿네"하면서 자청 단골이 되는 사람이 있었다.

◆장애인에게 컴퓨터 전하는 '사랑의 교대'

그때부터 윤혁씨 모자의 2인1조의 컴퓨터 가게는 급물살을 탔다. 윤혁씨가 말로하면 엄마가 부품을 뽑고 빼고 조리고 실제 일을 한다. 주문을 받으면 밤새워 컴퓨터를 조립하고 수리했다. 매일 엄마가 교동시장에 컴퓨터 부품과 각종 소모품을 떼러 가거나 배달을 다녔다. 군에 간 막내 동생도 학교만 파하면 형의 가게에서 컴퓨터를 고치고, AS를 나갔다. 그때부터 윤혁씨는 새 컴퓨터를 산 고객이 버린 구형 컴퓨터 여러대의 부품을 재활용하여 만든 컴퓨터를 장애인에게 갖다주기 시작했다. 스스로 할 수 없어 평생 받기만 하던 장애인이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위해서 품을 아끼지 않는 '사랑의 교대'를 시작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한두가지 핸디캡은 있다고 봐요. 제가 만약 몸이 성한데도 노력하지 않고 뒷골목 건달 노릇이나 하고 살지 누가 알아요."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거라"

평생 눈물의 일기를 써온 엄마는 그 한을 초월한 동심으로 승화시킨 순진무구한 글로 수필(월간 문학세계), 시(한맥문학) 부문에서 동시에 등단했다. 어머니 박씨가 낸 시집 '밤하늘 등불하나 걸어두고'에는 이런 시가 있다.

다시 태어나면 새가 되거라/자유로이 나르는 새가 되거라/가슴 탁 트이는 바다 위를/훨훨 나르는 새가 되어라/(새가 되거라 전문)아들의 자유로운 행보를 간절하게 바란 이 시를 보고 일본의 원로 미나미(60년 전통의 시지 '사쿠' 회장) 시인은 그 순수함에 감동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시인 엄마를 위해 윤혁씨는 '이슬나라'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인터넷으로 세상에서 단 한권뿐인 엄마만의 시집도 여러권 만들어주었다. 박씨에 홈페이지에 자주 들러서 좋은 흔적을 남기고 가는 소설가 이외수씨는 자신의 격외선방에 모자를 초청했다.

"맘껏, 네 집처럼 기다녀도 좋다는 선생님의 배려로 편하게 놀러갈 수 있다"는 박씨는 지난 가을, 아들과 함께 춘천 이외수씨집을 다녀오면서 따뜻한 정을 듬뿍 받고 왔다. 이때 이외수씨는 모자에게 "산을 만나면 산이 되고, 물을 만나면 물이 되라"며 유연한 삶을 살도록 권해주었다.

"아들과 같이 말아톤을 보는 두시간 내내 울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닌 바로 우리 얘기였으니까요."살아있는 매 순간마다 맘껏 사랑하고, 맘껏 노력하며 살고 있는 박씨 모자의 삶은 제임스 조이스의 경구와 닮았다. "이 순간, 이곳을 단단히 붙들어라. 미래는 남김없이 이 곳을 지나쳐 과거로 몸을 던지나니..."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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