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도 이서면 이상욱씨

자연사랑과 집에 대한 철학이 맛좋게 버무려진 집이다. 26년째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상욱씨는 7년전 야트마한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진 곳, 청도 이서면 초입에 자신의 건축철학에 딱 맞는 집을 마련했다.

문을 열고 들자 푹신한 마당의 잔디가 '블루카펫'처럼 손님을 맞는다. 100평남짓, 전원주택으로는 낮고 왜소한 덩치지만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이라 마당이 넓어보인다.

돌과 나무로 지은 자연 그대로의 집이다. '집도 자연을 닮아야 한다'는 주인 이상욱씨의 남다른 건축철학이 그대로 묻어난다.

건물외벽은 석회와 색소 그리고 시멘트를 섞어 만든 인조 돌로 마감을 했다. 값이 싼데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어 일석이조. 지붕 역시 야산의 모양을 그대로 본 떠 둥글다. 멘사드로 지붕을 마감한데다 경사가 높아 눈과 비는 물론 바람도 효과적으로 막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 위에는 다시 껍질이 그대로 있는 나무를 기와처럼 얹었다. 눈,비가 그대로 흘러내려 나무가 부패하거나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죽은 나무라도 건축을 통해 이렇게 다시 살아난다"는 설명이다. 건축업에 몸담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나무사랑이다. 이같은 사랑이 동향에 자리잡은 감나무를 살리기 위해 20cm정도 집을 줄여 짓기도 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은 더욱 각별하다. 대문옆에는 토평정(土坪亭)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장단지 만한 돌맹이가 턱 버티고 있다. 토평출신인 아내의 별칭을 따서 지은 집의 택호란다.

'집은 일단 낮아야 한다'는 것 역시 주인의 생각. 그래서 마당과 집의 바닥이 30cm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배수문제는 최신 공법을 이용해 간단히 해결했다. 주인은 "바닥이 땅과 가깝다 보니 대지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거실을 합쳐 건물 평수는 30평남짓, 그래서 방의 크기를 줄였다. 거실이 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대신 H빔을 사용하여 거실이 넓고 기둥이 없어 내부가 시원해 보이도록 했다. 옛날 석가래 개념을 도입, 섬세한 마감으로 자칫 흉할 뻔한 H빔의 모습을 예쁘게 단장했다.

거실 한가운데 턱 버티고 있는 베치카, 겨울의 운치를 한껏 살려준다. 보통 매립형인데 비해 노출형태를 띠고 있다. 역풍이 없고 그을음을 없애주는 데다 난방효율까지 높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베치카는 어떤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냐에 따라 운치가 확 달라진단다. 사과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면 파란불꽃이 올라와 동화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화력이 센 참나무를 사용하면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불쇼'를 감상할 수 있다고.

전통한지로 벽지를 바른 큰방에는 꽃모양 문갑위에 화병, 호롱불 등을 장식, 고풍스런 멋을 연출했다. 전통 격자 무늬를 살린 창문은 창틀에 먼지가 앉지 않게 안쪽과 바깥쪽 모두에 유리를 덧댔다.

거실밖 베란다는 또 다른 세상이다.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처럼 1평 남짓한 공간에 작은 집들과 인형, 촛불 등으로 '동화속 마을'을 구현해 놨다.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2층 다락방은 키 낮은 천장에다 아늑함이 묻어난다. 세모꼴 창문으로 들어오는 전원풍경이 일품이다.

주인은 "전원주택은 꼭 돈이 많아야 하는 게 아니다"며 "부지런한 자는 누구든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용의 500자평

26년째 건축에 몸담고 있는 이상욱씨는 10년 전에 만나 단지형 전원주택을 대구에 보급해 볼 방법을 모색해 본적이 있었다. 6년 전에 청도에 들어와 살고 있는 이씨는 전원의 삶을 접하니 "꿈꾸는 자만이 그것을 가질 수 있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서 여기 사는 것이 아니라 도심에 사는 비용의 3분의 1만 떼어내어 전원에 투자하면 삶의 크기는 3배로 아름답게 살 수가 있습니다." 결코 넉넉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흔히 말하는 팔자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이야기다.

그의 집은 기존 마을에서 양옥(전원주택)으로는 처음 지었고 지금은 이사장 집을 주위로 5채의 멋진 전원주택에 상시 거주하는 동호인 촌이 되었다. 건축전문가인 그이기에 동서는 좁고 남북은 길어서 북쪽에 집을 앉히니 119평의 대지가 두배는 넓어 보인다.

멘사드형과 박곡형의 지붕을 조화롭게 만들어 놓고 찻방으로 사용하는 동쪽 방에는 동창 넘어로 기존 감나무를 살려놓은 자연 사랑의 마음과 격자 나무를 넣고 양쪽에 유리를 붙힌 창문은 한옥창살의 정겨운 느낌과 단열을 함께 처리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나무껍질 붙은 죽은 나무를 이용해 울로 사용하면서 나무의 제2의 인생을 사람과 함께 하는 아이디어도 도입했다.

일주일에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은 이곳에 머물며 잔디도 가꾸고, 책도 읽고, 맑은 생각도 한다는 이상욱 사장의 전원사랑의 삶이 언제 보아도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이여짐의 원천이였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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