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야당지도자의 국회 대표연설을 계기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정국의 주요 화두로 등장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주로 대통령제를 전제로 한 대통령 임기의 중임제 도입 및 부통령제 신설과 같은 마이크로적(Micro)인 것에 중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50여년 간의 대통령제 시행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제는 의원내각제 도입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방향에서의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필요한 때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사회는 대통령의 선출 및 업무수행과 관련해서 엄청난 갈등과 혼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한국의 정치문화나 지도자 개인의 자질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대통령제 제도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학자들의 연구결과이다.
첫째, 대통령제는 선거에서 한 표라도 많이 획득한 후보가 대통령에게 허용되어 있는 모든 권한을 독식하는 데 비해, 패배한 후보는 어떠한 권력도 행사할 수 없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원리가 작용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대통령 선거전은 사활을 건 경쟁이 될 수밖에 없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심리가 작용한다. 반면 의원내각제에서는 연립정권 등의 구성을 통해 여러 정파가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므로 선거과정에서의 경쟁은 완화될 수 있다.
둘째, 대통령제는 여소야대의 여지가 항상 존재하므로 의회와 대통령은 항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의원내각제에서는 총리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총리와 의회가 충돌할 가능성은 없다.
셋째, 대통령은 고정된 임기를 가졌으므로 대통령을 둘러싼 내외적 환경변화에 대해 대통령직의 조작을 통한 능동적 문제해결을 거의 불가능하게 한다. 반면 의원내각제에서는 총리의 사임 또는 총리에 대한 불신임 제기라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을 통해 총리의 임기를 변경시킬 수 있다.
넷째, 후보 검증의 문제점을 가진다. 장기간의 정당생활과 의원생활을 통해 총리후보가 되는 의원내각제에 비해, 대통령제에서는 기존의 정치나 정치가가 불신을 받고,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하는 민중들의 열망이 강할 경우 이에 편승해서 의외의 인물이 당선될 수 있다.
대통령제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의원내각제 도입에 대한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의원내각제가 강력한 지도력의 행사를 억제할 수 있으며, 또 잦은 내각교체로 이어져 정부의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의 경우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는 안정적인 정부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에게 의원내각제의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제2공화국 시절의 그것은 단지 9개월만의 짧은 실험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이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1950년대 이래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22개국 가운데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19개국에 이르고 있으며, 세계에서 대통령제가 성공한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개헌논의에 있어서는 권력구조 자체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하는 매크로적(Macro)인 방향에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세헌 '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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