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 벽에 붙은 대자보를 읽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곤했던 대학생 무리.
내가 나서지는 못했지만, '투사'는 아니었지만 총학생회, 단대학생회, 과학생회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내가 못하는 역할을 학생회가 대신 해주는 데 대한 신뢰가 있었다.
1980년대 총학생회는 분명한 투쟁목표가 있었고 일반 학생들도 총학생회의 정치활동에 최소한 소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더 적극적인 학생들은 "내가 해야지!"하는 분명한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2005년. 대학가에 대자보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취업특강과 복지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정보지만 대학건물 벽에 나부낀다.
이 같은 시대변화는 대학 총학생회의 역할도 바꾸고 있고 학생회의 고민도 깊게 하고 있다.
◇'정치'에서 '복지'로
지난해 11월 경산 한 대학 총학생회장 후보는 '학우 생일 챙겨주기', '취업대책 특별위원회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후보는 당선됐다.
올해 초 대학등록금 협상에서 이 회장은 현실성 없는 동결보다 학우들의 복지를 최대한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 대부분의 목표를 달성했다.
1990년대 이후 정치투쟁, 대정부 투쟁의 명분이 약화되면서 총학생회는 선거공약에서부터 당선 후 활동에서 학생들의 권익 및 복지향상에 '올인'하고 있다.
영남대 조준규 총학생회장은 "학교 바깥 문제에 신경을 쓰면 학생들의 외면을 받기 쉽고 학생들이 질 높은 수업과 피부에 와 닿는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고객의식'이 자리 잡아 많은 부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대구가톨릭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등록금을 동결, 올해는 어느 정도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인상은 동의해주되 학생회관 리모델링, 장학금과 체육시설 확대 등 학생복지와 취업쪽에서 대부분의 목표를 달성했다.
김종관 대구가톨릭대 총학생회장은 "대안 없는 투쟁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학생들의 요구에 많은 부담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복지를 최대한 끌어내는 것은 총학생회의 당연한 역할이다"고 말했다.
◇더해가는 무관심
대구 시내 한 대학은 지난해 총학생회장 출마자가 없어 전 회장이 계속 총학을 꾸려가고 있다.
계속 공고를 내며 선거를 해보려 하지만 지원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 생존경쟁을 맞고 있는 대학가의 경쟁풍토는 자연 학생들을 자기 일에만 몰두하게 하고 있다.
각 대학 총학생회는 "비난이라도 해달라. 이는 관심의 표출 아니냐"며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갈망하고 있다.
김영우 경북대 학원자주화추진위원장은 "솔직히 1980년대 선배들이 부럽다.
학생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 아니냐. 사회가 그렇게 만든 측면이 강하다"며 시대흐름으로 받아들였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거부감을 덜면서 관심을 끌 수 있는 '세련된 참여'를 유도하는 데 고민하고 있다.
경북대 농과대 학생 이한수씨는 "학생의 대표인 학생회가 생명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이 개인주의에 빠져 사회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외면하려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고 최근 학생들의 무관심을 우려하기도 했다.
◇등록금 투쟁이 한해 농사의 절반?
학생들이 가장 요구하고 있는 총학생회의 역할은 '복지 총학'이다.
이 때문에 총학생회는 등록금 투쟁에 가장 신경을 쓴다.
인상률 최소화는 물론 일정선의 인상이 불가피하더라도 최대한 학생복지에 끌어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이 때문에 일부 대학은 학기초마다 홍역을 치르고 있다.
경북대는 학교 측과의 갈등 끝에 최근 등록금 인상에 합의했고 영남대 총학생회는 총장실을 점거한 채 대학본부가 계속 갈등을 빚고 있다.
오상택 영남대 총학생회 학생복지위원장은 "앞으로 학생들의 참여없는 등록금 인상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인상을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참여 속에 합리적인 결정과정을 거치는 시스템을 만들고 납부자인 학생들의 동의를 받으려는 학교 측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춘수기자 zapper@iam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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