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교육도 서비스 산업…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교육은 서비스 산업으로 분류된다. 공적인 사회 봉사의 기능을 지닌 3차 산업이다. 그런데 교육계에서는 교육을 일종의 서비스라고 이야기하면 불쾌감부터 보이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사람의 근본을 형성하고 인격을 쌓도록 이끌어주는 막중한 책무를 남의 시중드는 일, 금전적 대가를 바라고 웃음과 친절을 보이는 일 정도로 취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입맛에 맞추느라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고, 공교육을 뒤흔드는 사교육에나 적당한 표현을 학교 교육에 연결시키지 말라고 점잖게 꾸짖는 분도 있다.

근대 공교육 제도에 대한 구상은 프랑스 혁명기의 콩도르세(Condorcet)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장이 지배하는 시민사회는 직업 교육을 맡고,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시민으로서의 기초를 제공하는 일반 교육은 국가가 맡는 구조다. 이때부터 교육은 시민사회나 시장이 아닌 국가의 공적인 기능에 포함돼 오늘날까지 지속돼왔다. 여기에다 우리나라는 학문의 기능을 인격 형성과 도야에 두는 인식이 강해 교육에 일종의 신성함까지 부여하다 보니 서비스라는 표현 자체에 거부감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서울대의 모습을 보면 교육계 역시 시대의 변화와 여론의 흐름을 외면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눈에 띄는 것이 자발적인 '강의 평가' 참여 분위기다. 평가 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난해 10여 개 학과이던 것이 올해는 27개로 늘었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더 흥미롭다. 개강 때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해 강의 내용과 수준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강의 계획을 정하고 성취도를 수시로 확인하는 '주문식 수업'을 도입한다거나, 기업의 최고 경영자나 외국 유명 대학 교수를 초빙해 현장감을 높이는 등 수요자에 대한 서비스 개념을 도입한 모습이 역력하다.

올해 초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조벽 미시간 공대 교수의 책을 한참 동안 서서 읽은 적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에서 그는 무기력에 빠졌으면서도 치료에 무관심한 우리 교사들에게 진정한 교수법의 필요성을 끝없이 강조하고 있다. '가르치는 일에 지칠 땐 마지막 수업을 준비해 보라'는 그의 제안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교수법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교육자가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이다. 학생들이 교수의 마음을 파악하는 데는 1분도 아닌 단 10초가 소요된다고 한다. 교수법 기술을 미처 부릴 수 없는 짧은 시간이다. 저 교수가 그저 시간이나 때우러 왔는지, 학생들을 인격체로 대해 주는지를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학생들에 대한 '배려'야말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교사가 되는 조건이라는 그의 이야기는 교육이 서비스 산업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 따위는 한 단계 뛰어넘은 것이다.

학교로부터, 교사로부터 가슴 따뜻한 서비스를 받는다는 건 학창 시절에 한 번만 있어도 좋을 최고의 기억이요, 자녀를 둔 학부모가 가장 목말라하는 것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요즘 추세에 비춰 누구나 곧 그리 될 거라고 한다면 성급한 기대일까.

김재경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