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새까만 봄나무에 거짓말처럼 연두잎 돋으면

금잔디 무덤가에 제비꽃 피면

꽃피우고 싶어 몸 가렵다

몸 가렵니 썩나 보다 썩어가나 보다 저 복숭아나무 아래

두엄더미

잘 썩어 푹푹 뿌리에 가 닿나 보다 새까만 뿌리에 봄나무에

가 닿아 연두잎 몸 가렵나 보다

박미영 '봄/몸'

매연이 새까만 도시 한복판 나뭇가지에서 참새의 부리같이 뾰족한 잎들을, 뾰족뾰족 내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짓말 같았다.

오래 기다린 봄이지만, 저 가늘고 새까만 나무는 겨울내내 흡사 죽은 것 같았으니까. 사실은 이 죽음의 도시 위에서라야 정말 제대로 된 봄은 올 수 있다는데. 봄은 무덤가에 오고, 푹푹 썩어서 거름이 되어야 오고, 누군가 거름이 되어 주어야 오고, 도시에 무슨 거름이? 하지만 젊은 시인이여, 썩어 복숭아나무 뿌리에 가 닿고 싶은 젊은 시인이여, 도화꽃을 네 몸에 피우고 싶어, 지금 몸 가려운 시인이여, 잘 썩어 가면 무슨 꽃? 너의 애인이라도 오니? 고작 돈도 안 되는 시 몇 편 오니? 그게 이제껏 썩어온 대가의 너의 봄이니? 박정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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