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패럴 밸리 용도 전환 검토하라

감사원이 대구시 봉무동에 추진 중인 패션어패럴 밸리 조성 사업 추진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산업자원부와 대구시에 통보, '패션 도시'의 꿈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게 됐다. 감사원의 지적에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와 산업연구원(KIET)등도 고급 직물 생산 기반부터 먼저 구축하고 패션산업으로 진출하라고 조언했었다.

사실 어패럴 밸리를 비롯한 '밀라노 프로젝트'는 김대중 정부 때 대구 섬유산업 지원 방안을 강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맞춰 급조(急造)된 사업이다. 대구시는 당시 대구경북개발연구원이 만들어두었던 대구 섬유산업 육성 방안 초안에다 지역 섬유업계의 현안을 종합해 2천억 원 정도 규모로 올렸다. 하지만 산자부는 당초 예상보다 사업비가 적자, 사업 규모를 확대하라고 다시 대구시에 지시했다. 이에 대구시는 어패럴 밸리를 비롯한 각종 사업들을 추가했고, 국'시비와 민자를 합쳐 6천800억 원 규모로 확정됐다.

따라서 '밀라노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관련 세부사업끼리 연계성이 없는 '백화점식 사업'이 될 수밖에 없었고 사업 타당성 역시 정밀하게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김대중 정부의 '동진(東進) 정책'과 중앙 정계 진출을 노렸던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정치적 야심'이 빚은 합작품이었지, 대구 섬유산업의 현실과는 괴리된 정책이었던 셈이다.

더욱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도 지역 섬유업계와 대구시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다. 정부 지원에 익숙해 있던 지역 섬유업계, 특히 직물업계는 직접적인 지원을 바랐다. 하지만 문 전 시장은 고부가 섬유제품 생산만이 대구 섬유산업의 살길이라며 인프라 구축과 고기능성 섬유 생산, 패션산업 육성에 주력, 직물업계는 민자 출자 등에 비협조적이었다.

게다가 외환위기는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던 지역 섬유업계에 '위기'가 아니라 '호기(好機)'가 됐다.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덕분에 수출만 하면 엄청난 돈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대구 섬유직물업계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면서 몰락을 자초했다.

어패럴 밸리 사업은 제직'염색에 편중된 지역 섬유산업 구조를 패션 디자인'봉제 등 고부가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대구 섬유산업은 이를 추진할 기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범용 직물 생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봉제산업 역시 중국 등 후발 개도국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숙련된 봉제기술 인력과 디자인 인력도 없어 선진국 패션산업을 따라잡기에도 힘이 부친다. 어패럴 밸리 사업은 처음부터 '잘못 꿴 단추'였던 셈이다.

대구시는 감사원의 재검토 통보에도 불구, 단지배치'입주 수요'재원 조달 등을 전면 재검토, 민자를 유치해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원이 재검토를 통보한 사업에 정부가 국비를 지원할 리 만무하다. 또 대구 경제의 여건상 민자 조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첨단 업종이 아닌 섬유산업에 투자자가 나설지 의문인 것이다. 결국 어패럴 밸리 사업은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어패럴 밸리 조성을 최소 규모로 축소하고 나머지는 다른 산업 용지로 전환하면 된다. 부지는 조성돼 있고 도로 등 인프라도 건설하고 있으니 동대구 역세권 개발과 연계해 첨단산업 단지 등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안 되는 사업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다. 포기하려면 빨리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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