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교시 수업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수업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전화벨 소리에 짜증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학교 홈페이지에 학부모의 질문이 올라왔으니 바로 답변을 해 달라는 전화였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며칠 전 나누어 준 '1학년 권장 도서' 목록에 대한 비판 글이었다. 내가 만들어 학년 전체에 돌린 것이었다.
학부모의 항의는 먼저 교사의 취지는 좋고, 다른 책을 가지고 와도 된다지만 도서목록을 보냄으로써 정해진 도서를 가져오라는 것으로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과, 왜 학교 도서관을 두고 학생들에게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가에 대한 불만이었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타당한 오해며 항의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학급문고를 만든다고 네 다섯 권의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한 며칠 뒤, 120여 권의 도서목록을 보냈으니 보는 순간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요즘 동화책 한 권은 거의 만 원에 가까운 돈인데, 도서 목록에 없는 책을 보내기도, 안 보내기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 미안했다. 하지만 홈페이지의 글을 보는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어제는 1년에 한 번 있는 전교생 전체 학부모회의 날이었다. 작년, 재작년에는 학부모회의에 참석한 학부모들에게 필요하다면 도서목록을 가지고 가시라 했다. 참석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좋아했다. 참석하지 못했던 학부모 중에서는 모두가 필요한 건데 참석한 사람에게만 주면 어떡하냐고 불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전체 학부모회의 전날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120여 권의 도서목록을 정리했다. 흐뭇해 할 학부모의 얼굴을 떠 올리며 피곤함을 잊었다. 마음속에서는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책들이 학급문고 책꽂이 한 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즐거운 욕심도 부렸다. 그러나 도서목록을 만드는 내 모습과 도서목록을 받아든 학부모의 상황은 너무도 달랐다.
교사의 입장에서 독서 교육을 제대로 하자면 재미있고 내용이 우수한 책이 필수 조건이다. 이 상황이 충족되지 않으면 독서교육은 시작부터 어렵다. 그러나 아이들이 짜투리 시간이나 아침시간에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학급 작은 도서실은 쓰레기 같은 책으로 가득하다.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집에서 쓸모없는 책, 보지 않는 책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번과 같은 일은 많은 학교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교사와 학부모의 생각 차이를 넘어 학급 문고에 좋은 책이 가득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 예산에서 학급문고용 책을 사서 채워주는 것이다. 더불어 학부모들도 학급에 보내는 책을 집에서 보지 않는 책, 쓸모없어서 버리는 책, 발행된 지 오래된 책을 보내려는 생각은 떨쳐야 한다. 그 책을 매일 만나는 아이는 내 아이이고, 내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이다.
이은생(대구 진천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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