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임향한 일편단심 가실줄이 있으랴'
고려 말기의 문신 포은 정몽주가 1392년 4월 4일 개성의 선죽교에서 이방원 측에 피살됐다. 역성혁명을 거부하고 고려 조정에 대한 충성을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이방원은 이 날 저녁 정몽주와의 술자리에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하여가(何如歌)'를 불러 혁명에 동참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정몽주가 '단심가(丹心歌)'를 부르며 거절의 뜻을 비추자 조영규를 교사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그를 선죽교에서 때려 죽였다. 혁명 반대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 제거되자 정도전을 비롯한 이성계 추종 세력은 혁명을 계속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새 왕조 창업에 성공했다.
현존 정권을 뒤엎는 과정에서 피를 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조선 사회는 정몽주에게 통치 이념 상 큰 빚을 졌다. 그가 '주자가례'의 실천운동으로 당시 주자학의 이념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의 근간을 흐르는 성리학이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1904년 시인 이육사 출생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창립 ▲1968년 마틴 루터 킹 피살 ▲1969년 사상 첫 인공심장 이식수술 성공 ▲1990년 중국, 홍콩통치법 가결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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