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 수입협상 과정에서 사과와 배 등 중국산 과일에 대해 수입 위험평가 절차(검역)의 간소화 등 편의를 봐주기로 했다는 '이면합의설'이 불거지자 과수농가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과수 1위인 경북지역에선 지난 2000년 정부가 중국과 마늘협상 때도 긴급수입제한조처(세이프가드)를 연기한 사실이 2003년 뒤늦게 들통났던 사실을 떠올리며 정부에 또 한번 속았다는 배신감으로 허탈해 했다.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이후 과수원을 겨우 유지해오던 농가들은 아예 이 참에 과수원을 갈아엎을 태세고 정부가 올해부터 추진 중인 '과수원정비 지원사업'에도 농가들의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버려지는 과수원
"이대로 가면 조만간 중국산 사과와 배가 쏟아져 들어올 테고 그나마 경쟁력이 있다던 국내산 사과와 배도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만은 없을 겁니다.
"
상주시 공성면 옥산리의 석종훈(51)씨는 비탈산 과수원의 썩어가는 사과나무들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지난 수십 년 사과 농사꾼으로 살아오며 가격 폭락, 기상 피해 등 온갖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지만 결국 8천여㎡ 규모의 사과나무를 뽑아 버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인근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신모(53)씨 역시 8천400여㎡의 사과나무를 최근 모두 뽑아냈다.
신씨는 "자식을 버리는 심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사과 대신 다른 농작물을 심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은 도내 과수 주산지마다 마찬가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경북 도내에만 버려진 과수원이 수백ha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상당수 과원은 수목 노령화 등으로 생산성이 크게 낮은 실정이다.
김천시 개령면 남전리에서 20년째 배밭을 일궈온 김교익(45)씨는 "일손도 부족하고 수입개방을 눈 앞에 둔 만큼 하루빨리 미련을 버리는 것이 상책"이라며 배나무를 베어낼 계획이고 의성군 점곡면 강병학(45)씨도 "사과나무가 고목이 돼 경제성을 잃은데다 장래 전망도 불투명해 약초를 심을 예정"이라고 했다.
■위기감이 현실로
이처럼 과수산업의 여건이 악화하면서 정부가 올해부터 2009년까지 추진하는 과수원정비지원사업에도 농가들의 신청이 몰리고 있다.
과수원정비지원사업이란 방치된 과원들이 인근 과원에 병해충을 전염시키는 온상이 되고 농촌 고령화 등에 따라 과원들의 재배기술·경영능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0.1ha당 60만~90만 원의 철거비를 지원한다.
한·칠레 FTA 체결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시설 포도, 키위, 복숭아 3품목의 보상을 위해 폐원을 지원하는 'FTA 폐원사업'과 달리 모든 품목이 해당된다.
농림부 과수화훼과 이영식 사무관은 "과수농사를 포기하려는 농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과수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지원하는 사업"이라며 "첫 해인 올 해 사업규모는 1천여ha 100억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도의 경우 최근 접수를 마감한 결과 모두 810농가가 247.66ha의 과원 정비를 신청했다.
내용별로는 방치과원 137.41ha, 병해충 발생과원 29.31ha, 생산성 저하과원 80.37ha 등이었다.
지역별로는 영천 137농가 34ha, 의성 99농가 31.6ha, 김천 110농가 31.1ha, 상주 140농가 30.3ha 등으로 나타났다.
■과수농의 또 다른 고민
정부지원으로 과수원을 포기하는 농가들과 달리 정부의 FTA기금 지원과 자부담으로 고목을 캐내고 수목 갱신을 한 과수농들은 더욱 절박한 심정이다.
FTA기금 지원사업은 정부가 과수생산시설 현대화를 위해 기존 사과나무를 캐내는 대신 생산성이 높은 키낮은 사과원 등을 조성할 경우 ha당 사업비 3천900만 원 중 국비로 50%를 지원하고 나머지 50%는 융자(30%)와 자부담(20%)하게 한 제도다.
의성군 옥산능금 새마을금고 김치수(60) 이사장은 "농민들이 5년 앞을 내다보며 수목 갱신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중국산 사과와 배 수입절차를 간소화해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과수 농민들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다"고 탄식했다.
더욱이 지난해 사과값이 강세를 보이면서 올해 묘목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도 과수농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과 만생종 묘목은 지난해 7천 원 수준에서 두 배 이상 오른 1만5천∼2만 원으로 폭등했다는 것.
2천여 평을 키낮은 사과원으로 조성 중인 신용선(46·의성군 옥산면 입암2리)씨는 "경쟁력을 높인다며 키낮은 사과원 수목갱신을 권장해 놓고 나무도 심기 전에 중국 사과와 배를 수입한다는 것은 농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5, 6년 후 수확을 시작한들 중국산과 경쟁이 되겠느냐"고 걱정했다.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상주·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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