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면담 조사는 노(No)라고 기록해 달라."
프랑스 주재 중앙정보부 거점장으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납치·살해 사건을 현지에서 총지휘한 것으로 조사된 이상열(76) 전 공사가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의 조사 과정에서 한 말이다.
이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씨는 진실위의 3차례에 걸친 면담조사에서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재직 중 취득한 정보는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는 정보요원의 철칙을 깨뜨리기 싫다는 데 기인하며 이런 점에서 이씨는 후배들로부터 훌륭한 공작관으로 존경받고 있다는 게 진실위측의 설명이다.
이씨는 이 사건에서 중정 최고책임자였던 김재규 전 중정부장과 살해사건을 실행한 신현진·이만수 두 행동요원의 가교 역할자이자 프랑스 현지에서 공작을 총지휘한 책임자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중정부장으로부터 김형욱 납치·살해 지시를 받은 뒤 이를 실행에 옮길 적임자로 당시 파리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중정 직원인 신현진·이만수(이상 가명) 두명을 점찍었다.
구체적인 살해 방법을 모의하기 위해 사건 일주일 직전인 1979년 10월 1일 급거 귀국, 두 차례 면담을 가진 중정부장으로부터 살해에 사용할 목적으로 소련제 소음권총과 독침을 건네받은 것으로 진실위측은 파악하고 있다.
사건 당일 파리시내 리도 극장 인근으로 김 전 부장을 유인한 것도 그였다.
당초 군에 몸담고 있었던 그는 1963년 '원충연 대령 반혁명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맺은 김형욱과의 인연을 계기로 중정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김형욱의 후원아래 승승장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해사건 전 김형욱과 함께 파리 시내 카페와 카지노 등지를 동행했다거나 김형욱이 사건 당일 돈을 구하기 위해 이씨를 만나는 데 전혀 의심을 하지 않은 것도 평소 둘 사이의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추정케 한다고 진실위는 밝혔다.
따라서 이씨가 살해 현장에 가지 않고 중간에 빠진 부분도 김형욱과의 친분관계때문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처럼 이씨가 사건 전모를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진실위측도 이씨의 양심적인 고백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이씨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멕시코 공사를 거쳐 1977년부터 주프랑스 공사를 지냈으며 이후 미얀마, 리비아, 이란 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홍조근정훈장, 충무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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