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계 돈가뭄, 그러나 숨구멍은 있다

최근들어 한국 영화계의 돈 가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상찮다.

실제로 최근 6개월 간 영화계의 성적을 볼 때도 그렇고 연말께 2천600억원 규모의 영화 펀드가 만기를 맞는 것을 생각할 때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숨구멍은 반드시 있다. 한국영화의 힘에 대한 신뢰로 오늘도 투자처를 찾아 활발히 움직이는 손길이 있는 것이다.

▲신뢰는 무너지지 않았다.

일례로 중견 투자·제작사 KM컬쳐는 요즘 투자할 작품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 말은 투자할 돈이 있다는 얘기. 그렇다고 이 회사가 최근 영화로 재미를 본 것도 아니다. '이중간첩' '빙우' '달마야 서울가자' 등 최근 손댄 작품들은 재미를 못 봤거나 참패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올해만도 '미녀는 괴로워' '여름 이야기' '어젯밤에 생긴 일' 등 세 작품을 크랭크 인 하고, 좋은 작품이 있으면 언제든 투자할 태세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KM컬쳐의 의지도 있겠으나 이 회사를 믿고 영화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얘기다.

KM컬쳐의 심영 이사는 "이미 세 작품이 세팅된 상태이긴 하지만 좋은 작품이 있으면 투자할 여력은 있다. 요즘 추가로 투자할 작품을 활발히 찾고 있다"고 밝혔다.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올들어 '말아톤'과 '마파도'를 제외하고는 흥행작이 없는데다 기대작들이 줄줄이 참패하는 등 영화계 분위기가 흉흉해졌으나 CJ, 쇼박스, 롯데는 여전히 돈을 '쏠'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라고 타격을 입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영화계 흥망은 병가지상사와 다를 바 없는 만큼 신규 작품에 대한 투자에서는 아직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다. 한 예로 CJ는 조만간 대규모 HD 영화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2000-2002년 만들어진 29개 조합, 2천600억원 규모 영상펀드의 청산 시한이 연말로 다가오고 그 바통을 이을 주자들이 아직은 그에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한 중견 투자사의 관계자는 "펀드들이 공백없이 오버랩되면서 가동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공백기가 생긴다고 반드시 적신호는 아니다. 현재 자금 사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을 두고 차츰차츰 해소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신규 투자자들이 움직인다

그 어느 때보다 연예계에 돈이 많이 몰려드는 가운데 영화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신규 투자자들이 새록새록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올해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의 영상투자조합 관련 1차 배정액이 70억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당장 SK텔레콤과 KTF, KT 등 통신업체의 적극적인 공세가 기운을 북돋워준다.

이들은 현재 내실 있는 영화사들과 개별 접촉을 하며 투자를 위해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DMB시대 컨텐츠 확보에 혈안이 된 이들로서는 지난 몇개월간 한국 영화판이 풀이 죽었다고 해서 흔들리는 기색이 없다. 그 때문에 중기청 지원 자금이 턱없이 작다고 해도 이들 막강 돈줄들이 영화계에 군침을 흘리고 있어 2천600억원 규모의 펀드가 청산된다 해도 큰 누수는 없을 전망이다.

여기에 새롭게 연예사업에 뛰어든 기업들의 자금도 쏠쏠하다. 인트래피드는 김지운,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총 네 편에 전액 투자하기로 했고 중소 영화사들을 하나씩 흡수하고 있는 케이앤컴퍼니는 최대 15편의 영화에 투자할 계획이다. 여기에 일본과 중국 자본도 있다. 영화세상이 제작하는 '가을로'와 '허삼관매혈기'에는 일본과 중국 자본이 유입될 전망이다.

▲철저한 프리프로덕션이 급선무

그러나 숨구멍이 있다고 해서 대책없는 낙관론은 금물이다. 급속하게 질적, 양적으로 성장한 한국영화계는 현재의 위기에서 자기비판과 자가검진을 철저하게 해야한다.

그중 급선무는 철저한 프리프로덕션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해 만들어지는 영화는 평균 50여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80편을 육박하고 있다. 그만큼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좋아졌다는 것. 하지만 이들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절반도 안된다. 상업영화의 존재 가치인 수익성에 대한 배반. 수익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무분별하게 영화가 양산된 탓이 크다. 투자자들이 땅파서 장사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이는 제작자들의 직무유기인 것. 누가 봐도 대책없는 영화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상업영화로서 '될 성 부른 지'에 대한 판단을 철저하게 하고, 개별 영화의 특성에 맞는 '규모의 제작'을 해야할 때가 된 것이다. 그동안 신나게 액셀을 밟으며 고속 성장을 했다면 이제는 엔진도 점검하고 연비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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