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는 나쁜 사람만 나오는데 이런 분도 좀 소개해주세요."
대구시 북구 침산동에서 인쇄업을 하는 황덕현(48)씨가 9일 매일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상당한 유혹을 뿌리치고 현금 100만원, 어음 1천만원, 통장 5개에 신분증과 도장, 각종 신용카드가 빼곡히 든 황씨의 손가방을 술자리까지 찾아와 돌려준 택시기사를 칭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7일 새벽 2시쯤 두류네거리 쪽에서 중부소방서까지 택시를 탔던 황씨는 자신에겐 엄청난 재산이 든 손가방을 택시에 두고 내려버렸다. 당시 술이 많이 취해 있었던 황씨는 가방을 두고 내린 사실도 모른 채 소방서 인근 구이집에서 고향 선배와 한차례 더 술자리에 어울렸고 약 5분 뒤 자신의 엄청난 실수를 깨달았다.
황씨는 "그 날 수금한 돈에다가 다음 날 처리할 일이 많아 평소보다 돈이 많았다"며 "정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손가방에는 신분증, 도장, 통장이 함께 있어서 (가방을) 주운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은행에서 충분히 빼 쓸 수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분 뒤 행운의 흑기사가 '짠'하고 나타났다.
조금 전에 자기를 태워준 택시기사 권상현(44·달성군 화원읍)씨가 두둑한 손가방을 내밀었던 것.
황씨가 내리자마자 다른 손님이 탔는데 뭔가를 감추는 것 같아 의심해봤다는 권씨는 '안에 뭐가 있나 둘이서 한번 보자'는 그 손님의 제의도 거절하고 차를 돌렸다. 황씨가 내려서 들어간 술집을 언뜻 봐 뒀던 것이다.
권씨는 "그래도 내 손님이었고, 가방을 잃어버린 본인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생각해보니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며 "견물생심인데 가방을 열어봤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택시기사가 된 지 4년 째지만 경인교통에서 일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아 월급이 80만원도 안된다는 권씨. 하지만 그는 택시에서 손님이 내릴 때는 습관적으로 실내등을 켜주고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시킨다고 했다.
"택시기사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인데 부끄럽다"고 말한 그는 한사코 사진찍기를 거절했다. 그 날 황씨와 함께 술을 마셨던 고향 선배 길문환(50)씨는 "너무 고마워 사례비 몇 만원을 건네도 끝내 거절하며 황급히 돌아가더라"고 권씨의 미담을 칭찬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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