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꿀꿀이죽'

지난날 우리에게는 '아침 자셨습니까?' '저녁 먹었니?'라는 인사가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배 꺼질라, 밥 먹고 뛰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아버지는 '밥 먹을 때 잡담하지 말라'고 꾸중하게 마련이었다. 우리는 그만큼 궁핍했으며, 굶주림에 익숙했었다. 식사 예절 역시 엄숙하고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그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식사가 '생존'보다는 '놀이'에 가까워졌다고나 할까. 소위 '보릿고개'가 먼 기억의 창고로 들어가고, '감성의 시대'가 온 까닭이다.

◇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와 양극화 현상으로 지금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날과는 달리 미각'후각'시각을 통해 감각적 자극을 만족시키는 요리가 '욕망의 총아'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남성들이 요리를 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어린이들에게까지 확산될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음에는 틀림없다.

◇ 서울의 한 어린이집이 아이들에게 '꿀꿀이죽'을 먹여온 사실이 며칠 전 드러난 뒤 이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발들이 쏟아지는 모양이다. '꿀꿀이죽'뿐 아니라 유통 기간이 다 돼가는 음식 재료로 간식을 만들고, 계단 닦는 걸레로 밥상을 닦는가 하면, 버스엔 정원 초과는 물론 통로 바닥에까지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다니 기가 찬다.

◇ 나이 든 어른들에게 '꿀꿀이죽'에 대한 기억은 떠올리기조차 을씨년스러울 게다. 6'25 한국전쟁 이후 식량이 부족해 미군들이 먹다 남긴 빵이나 스프'소시지 찌꺼기들을 모아 끓여 먹기도 했었다. 돼지들에게나 먹일 이 찌꺼기죽에는 심지어 담배꽁초와 같은 오물이 나오는 경우마저 없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것도 자기들이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다가 팔아 돈 버는 사람까지 있었지 않았던가.

◇ 이번에 들통 난 '꿀꿀이죽'도 야유회'생일잔치 뒤 남은 김밥이나 돈가스 등을 모아두었다가 끓인 죽이었다 고 한다. 그러면서도 부모들에겐 '따뜻한 영양죽'이라고 속였다니 화가 치밀고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당사자들도 자신의 자녀들이 만에 하나 그런 음식을 먹는다고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먹는 음식을 두고 돈만 생각하며 장난을 치는 일은 이 땅에서 반드시 사라져야만 하리라.

이태수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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