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수, 출구 없는 사회의 절규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패자 부활전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대학입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수한 경쟁 중에 가장 처절하고 잔인한 단판승부이다. 초교부터 고교 3년까지의 12년 동안 아무리 공부를 잘 해 왔다고 해도 11월 수능시험 당일날 점수가 잘못 나오면 그 모든 것은 허사가 되고 만다. 단 한 번의 시험 결과에 의해 평생 부당한 편견과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든지 아니면 재수를 해야 한다.

수능시험을 치는 날 수험생과 학부모의 표정을 보라. 탄알이 한 발 든 6연발 권총의 실린더를 마구 돌린 뒤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사람처럼 비장하다. 시험공부의 어려움과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힘겨움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의사 면허증 취득 혹은 사법고시 합격 = 평생 부와 명예와 권력 보장, 한 번 시험 실패 = 영원한 삼류'라는 등식이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은 사회가 주는 단판승부의 참담함이 그들을 절망하게 하는 것이다. 단판승부로 운명이 결정되는 입시에 대한 두려움과 교육제도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의 예측 불가능성이 수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국적을 포기하게 하며, 무수한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대학 기말시험이 끝나는 6월 중순이면 수많은 대학 재학생들이 재수학원을 찾는다. 원하지 않는 대학에 들어가서 한 학기를 보내며 아무리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로해 보아도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시 나오는 것이다. 반수는 패자부활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다른 출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취하게 되는 최후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그 많은 반수생 중에 뜻을 이루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럴 수밖에 없음을 그들 스스로 잘 안다. 남은 4, 5개월 동안 이미 공부에 가속도가 붙은 경쟁자를 이기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예전과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모든 분야에서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식의 관행이 통용되지 않고 있다. 아무리 명문 대학에 입학해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기득권 같은 것은 없다. 지방대 학생이 세계가 놀라는 연구업적을 발표하는 경우도 많다. 외양과 간판이 아무런 검증 없이 위력을 발휘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어디에 있든지 실력과 콘텐츠가 중요하다.

기존의 선망받는 직업과 대학에 모든 인재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사회는 창조적 에너지와 유연성이 상실된 사회이다. 지금 화려해 보이고 안정되어 보이는 자리를 위해 치열한 소모적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스스로 새로운 자리를 창조하는, 다시 말해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곳의 햇볕을 지키고 즐기며 자아실현을 위해 자신과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디오게네스적인 인간형이 존경받고 성공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단판승부에서 실패했다면 긴 호흡으로 멀리 보며 차분하게 다음 승부를 준비해야 한다. 막연히 남의 자리를 부러워하거나 탐하지 말고 자신이 나아갈 자리를 스스로 개척하면서 그 공간을 꾸준히 넓혀가는 열정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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