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돼 있는 김천의 '빗내농악'은 우리나라 농악 대부분이 농사굿인 데 비해 군사굿이라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기예의 탁월함은 오래 전인 지난 1961년 제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으로 인정받았고, 지난해 10월엔 김제서 열린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해 명성을 이어갔다. 명실상부한 지방 전통 문화의 '명품'이라 할 만하다.
◇ 무형문화재는 속성상 지속적으로 갈고 닦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빗내농악'은 그런 위험을 비교적 잘 극복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발상지인 김천시 개령면 광천리(빗내마을)에 '빗내농악 전수관'을 건립하는 등 민관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다. 그런 조화로움이 천 수백년 전 조상들의 얼과 흔적을 오늘에 되살려내고 있다.
◇ '빗내농악'의 발상지 김천시 개령면 부근에 삼한시대 감문국(甘文國)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11대 석씨 왕 조분(230~247) 시대 영천지역의 골벌국(骨伐國)과 함께 신라에 합병된 것으로 전해진다. 감문국은 원래 가야권에 속해 있던 소국이었으나 가야가 무너지고 신라의 간섭이 심해지자 독자적인 세력 구축을 시도하다 신라에 토벌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당시 토벌대장은 이찬(伊飡) 석우로(昔于老)였다. 감문국이 신라 내해왕의 국상을 틈 타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조분왕은 당시 명장 석우로를 대장으로 감문국을 정벌했다. 석우로는 내해왕의 아들이며, 조분왕의 사위로 전해진다. 석우로는 신라의 국권을 확립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왜국의 심기를 건드린 발언으로 신라를 침략한 왜군들에 의해 화형 당했다고 전해진다.
◇ 감문국은 삼국사기 등에 나타난 석우로 등의 기록을 통해 유추되는 역사다. 지배자 중심의 역사가 작지만 역사의 한 주류였던 감문국의 역사를 아주 빈약하게 종속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천시가 감문국 유적 되살리기에 나선 것은 흥미롭다. 감문국 유적들이 아직도 상당수 남아있어 이를 정비'복원키로 한 것은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착상이다. '빗내농악'을 살려낸 역량으로 감문국 영욕의 역사를 되살려내기 바란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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