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후반의 첫날을 '말 많음'으로써 출발했다. '29% 대통령'이 국정을 계속 끌고 가는 게 옳은 건지… 연정(聯政)이 아니라 아예 권력 통째로 내놔라고 하면 그것도 검토해 보겠다고 가슴 철렁거릴 얘기를 쏟았다. 대통령이 저렇게 고민하는 걸 보면 "저러다 덜컥 하야(下野)하는 것 아냐?"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만든 'TV 대화'였다.

노 대통령의 충심은 읽힌다. 그러나 한 나라를 책임진 대통령의 입에서 걸핏하면 '정권 내놓겠다'는 투의 말이 잦으면 문제가 심각하다. '오죽하면'이 아니라 '걸핏하면'이다. "통째로…"라는 발언은 참으로 위헌적이다. 스스로 하야할 수는 있겠지만 국민이 맡긴 통치권을 제멋대로 '검토'하겠다니…. 어제 대통령의 발언 속엔 겸손도 없고 '내 탓'도 없었다는 점에서 불쾌했다. 대통령의 말씀이 연정 거부는 야당 잘못이고, 부동산 실패는 시장(市場) 잘못, 재신임 못 묻는 제도는 헌법 잘못이라는 투로 들렸다면 과문(寡聞)인가. 그런 투라면 '29% 지지율'도 국민 잘못일 터이다.

노 대통령이 역점 사업(?)으로 대연정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 걸 보면 하야의 뜻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지금 한나라당과 노 대통령의 차이는 '연정'이라는 밥상에 대한 견해 차이다. 한나라당은 '맛이 없다'이고 노 대통령은 '맛이 있다'이다. 국민도 맛이 없다는 쪽이다. 그러면 밥상을 물려야 하는데 대통령은 국민과 한나라당이 '입이 짧다'고 한다. 경제도 주가와 신용 평가 상승을 내세우곤 기다려 보자고만 한다. 2년 반의 기다림은 어디 적은 기다림인가.

대통령은 사흘 전 언론사 간담회에서 "말 솜씨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래 놓고 어제 또 말 솜씨를 발휘했다. 역시나 손해였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옛 시조다. 그리고 야당 탓'언론 탓'국민 탓 말고 내 탓'참모 탓'장관들 탓이라는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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