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한 인간의 평가를 그렇게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특히 마지막 회 '노량해전' 승전의 전후를 통해 군인(軍人)의 길이 어떤가를 보여준 대목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다. 역사교과서에서 익히 알고 있었던 '성웅(聖雄)'의 모습을 '인간 이순신'으로 인식하게 한 대목은 그야말로 '상식의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선조의 명(命)을 어기고 기어코 왜군의 퇴로를 차단, 섬멸시킨 결단을 보면서 "이순신은 진정 군인이었나, 만고의 역적이었나" 그 평가를 요구한 작가의 의도가 특히 돋보였다. 당시의 상식으론 임금의 명을 어겼으니 역적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구국의 결단'은 오늘날 '만고의 역적'이 아니라 참군인,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히려 그는 동'서(東'西) 양인 간의 당쟁의 희생자였고, 설사 그 마지막 전장에서 살아났다 해도 그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라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시사한 대목은 드라마의 압권이 아니었나 싶다.
반면 그 400여 년 후의 군인 '전두환'을 그린 드라마 '제5공화국'은 그야말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그려지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을 그렇게 매도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을 정도다. 훗날 YS나 DJ의 면면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그려진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특히 최근의 도청(盜聽) 파문으로 '문민 정부'나 '국민의 정부'의 부정적인 한 단면을 엿보인 대목에 이르러서 과연 YS나 DJ의 참모습이 어떻게 투영될 것인가 더더욱 궁금해진다.
'인간 이순신'이 그 당시의 가치관으론 역적일 수도 있듯이 한 인간의 일생을 진실되게 평가한다는 건 참으로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의 친일(親日) 사전에 수록될 민간 단체의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은 일면 위험하고도 성급한 처사가 아닐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온 당시의 인물들을 '친일'이냐 '반일'이냐로 획정한다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서다.
예컨대 열 살짜리 '아이'가 식민 시대를 살아왔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아이가 근 50세 가까이 일제 치하에서 살아가면서 마냥 반일(反日) 행적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가 반일 인사로 인정받으려면 독립 투사처럼 국외로 도망가거나 일제의 학교 교육까지 거부하고 산골의 화전민처럼 살아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35년 간의 긴 세월을 이렇게 살아온 백성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의든 타의든 일제를 인정하면서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온 게 민초들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힘의 논리에 의해 국권을 찬탈당한 우리의 비극적 운명이었다. 그걸 오늘날의 잣대로 재단한다는 건 참으로 위험하다.
일본서 대학 나오고 고등문관이나 판'검사를 했다고 해서 그걸 모두 친일로 규명할 수 있을까. 그 시절 천석, 만석꾼들을 모두 친일로 재단할 수 있을까. 일제에 아부하고 독립자금을 조금 낸 인물은 친일로 봐야 하나 반일로 봐야 하나. 충신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인들 과연 한평생 모두 '바른 삶' 만이었을까. 상(賞) 주는 문제가 아니라 고인(故人)에게 벌 주는 문제를 오십 년, 백 년이 지난 오늘에야 평가한다는 자체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더구나 민생고가 극도에 달한 작금의 나라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런 '과거사'를 캐내야 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과거사'에 매달리는 그 열정으로 현실의 민생 문제에 올인해도 시원찮은 판국이 아닌가. 당장 눈앞의 도청 파문을 규명하는 것도 벅찬 현실이다.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는 문제도 자칫 잘못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를 통째 태울 수 있는 일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기름값 문제도 예삿일이 아니다. 이런 판국에 대통령은 연정(聯政) 타령만 계속 하고 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朴昌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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