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험 위기관리

평소 매우 착실한 어느 학생이 상담하러 왔다. D-100일 이후 집중이 되지 않고 불안하여 하루하루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공부한 것을 자꾸 까먹는 것 같고 새로 무엇을 암기하려 해도 외워지지 않는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모의고사에서 점수가 잘나와도 어쩌다가 잘 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고, 점수가 좋지 않을 때는 그것이 진짜 자기 실력인 것 같아 절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극심한 자기 부정(否定)과 불신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같은 학과 학생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IQ검사를 실시했는데, 앞서 검사를 받은 집단이 그 다음날 검사를 받은 집단의 학생들보다 평균 10% 정도 점수가 높았다. 두 집단은 원래 비슷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었다. 검사 환경도 거의 동일했다. 높은 점수가 나온 집단이 검사를 받던 날 허리케인이 불었다는 차이만 있었다. 학자들은 좋은 점수가 나온 집단을 상대로 정상적인 기상 조건에서 다시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허리케인이 불 때보다 평균 10% 점수가 내려갔다. 불안감을 느끼거나 위기에 몰리게 되면 대다수 사람들은 긴장하게 되고 평상시의 능력 이상을 발휘한다. 그러나 긴장되고 급박한 상황이라고 해서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더욱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평소 낙관적인 생활 태도와 강인한 의지를 가져야 하며, 부단한 자기 긍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행동을 공격성(aggression)으로 설명하는 학자들이 많다. 프로이트는 죽음의 본능이 자아파괴를 피하여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려는 시도가 공격성이라고 했다. 따라서 공격성을 내재화하면 자살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고, 밖으로 드러내면 공격성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로렌츠는 공격성은 동물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투쟁본능이며 본능체제 전체 가운데 일부라고 보았다. 이 때 공격의 방향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고 했다.

위기 상황에서 공격의 방향이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될 때 불안, 초조, 우울증과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수능시험이 다가올수록 극도의 불안감에 빠지는 학생은 자아를 파괴하는 데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경우이며 대개 그 증세는 매우 심각하다. 공격의 방향이 외부로 향하게 될 경우에 욕구 불만과 불안감 등은 폭력성향을 띠게 된다. 우리 사회에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청소년 비행이 이 범주에 속한다. 다음으로 적절한 공격 대상(성취 목표)을 설정해 놓고 혼신의 힘을 쏟아붓는 경우가 있다. 가난한 수재가 고시 공부에 승부를 거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 까닭도 없이 생활에 활력을 잃고 수능 시험이 두려운 수험생들은 자기 자신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낙관적인 태도를 가질 때는 주변의 모든 정보가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되며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짜증스러운 일이 있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심리적 공황(panic) 상태에 빠지면 모든 정보가 자기에게 불리한 쪽으로 해석된다. 학생에게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곰곰이 분석해 보라고 했다. 더욱 나아지고자 하는 소망이 간절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생긴다는 사실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불안감은 사람을 적당하게 긴장시켜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에너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하게 했다.

채플린은 '세상이 슬프기 때문에 남을 웃긴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웃음에는 역설의 미학이 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게 한다. 수능 공부도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즐거운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학생의 맑고 깊은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 학생은 상담 이틀 후에 실시된 모의고사에서 평소보다 20점을 더 받았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ihn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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