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진료실에서 자살을 생각하는 환자를 만났다. 여고생 K양은 심한 두통과 복통으로 한 달째 결석중이다. 온갖 검사를 다 해보아도 원인을 찾지 못하자 부모는 아이를 정신과에 데려왔다. K양은 머뭇거리고 불편해하며 감정표현을 잘 하지 못했다. 청소년들은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참 시간을 끌던 여학생이 질문한다. '수면제 먹으면 죽나요?' 이 여학생은 어떤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자살을 생각하는 걸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충동적인 의도일까. 영화 '박하사탕'에서처럼 지금까지 꼬여왔던 잘못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구에서일까. 아니면 자기처벌적인 행위일까.
여학생과 영화 이야기를 했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적중했다. 한 여학생과 동성애적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 여자친구를 '아저씨'라고 부르고 자기는 그의 '꽃돼지'라는 것이다. 둘의 이런 관계는 학교 생활이나 학업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부모님은 성적저하를 추궁하고, '아저씨'는 우울증에 시달리자, K양은 해결 방안으로 동반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K양은 영화 주인공의 심정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동일시하며, 자기 문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잘 이야기하였다.
주인공 인우는 소나기가 쏟아지던 어느 해 여름, 비를 피해 자신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여자 태희를 사랑하게 된다. 그 후 인우의 군입대로 짧은 이별이 왔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17년 후, 인우는 어엿한 가장이자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여태껏 첫사랑 태희를 잊지 못하던 그에게 소낙비 같은 사랑이 다시 찾아온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인애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사람. 그러나 두 사람은 선생님과 학생 사이이고, 둘 다 남자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조건을 깨달은 두 사람은 호주의 다리 위에서 번지점프를 한다. 서로의 손을 잡고 끈을 매지 않은 채 번지점프를 하며 다음 생에서의 결합을 소망한다.
두 사람의 무의식에는 재생과 재결합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이승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을 저승에서는 이루고자 한다. 환자가 이렇게 자살 의사를 내비칠 때는 자세하게 물어봐야 한다. 자살 소망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랫동안 있어 왔는지,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통제할 수 있는지, 자살하는 것에 대한 방해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은 생각해봤는지, 그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준비한 게 있는지, 실제로 자살을 할 용기가 있는지, 유서를 쓴 적이 있는지, 죽음을 예상하고 마지막으로 할 일은 무엇인지 등이다.
영화는 참으로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정신병리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영화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영화는 시각적 이미지와 이야기가 결합된 속성 때문에, 일반인에게 친숙하지 않은 정신질환이나 증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스스로 내면의 갈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감정표현이 어려운 경우 영화 장면을 매개로 서로 구체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서 공감대를 가지기가 쉬운 장점이 있다. 이를 영화치료(movie therapy:cinema therapy)라고 한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