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사계절 중에서 인생의 정취를 가장 풍요롭게 해주는 계절은 바로 가을인 것 같다. 가진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누구나 청명한 가을이면 야외로 나가 자연을 감상하고 음미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주5일제가 된 이후 금요일 오후면 뉴스마다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비행기표가 어떻고 하여 잔잔한 가슴에 풀무질을 하곤 한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후텁지근한 날씨였는데, 이제 선풍기 바람도 풀벌레 소리에 밀려나는 선선한 가을이 다가왔다.

이 좋은 계절에 짬을 내어 시골길을 완행열차로 달리면 차창에 비치는 고향 같은 들녘이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넓은 들판에 누가 그렇게 잘 지었는지, 허수아비도 없는 들녘에 벼이삭들이 탐스럽게 영글어가고 있다.

지금쯤 팔공산 순환도로 양쪽에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승용차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을 것이다. 붉게 타는 저녁노을보다 더 곱게 물들어가고 있는 단풍잎은 사람들의 연약한 마음을 움직이는 성깔이 있는 꽃인가 보다.

혹은 인생의 황혼기에 삶의 고뇌를 마지막으로 불태우는 불꽃 같은 정열의 표현인가. 사람들은 이 슬프고도 매력적인 단풍이 좋아서 가을산을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 경관이 수려한 팔공산은 고찰을 보듬고 있어 시민들의 안식처가 될 뿐 아니라, 주위에 나직이 늘어선 단풍나무와 잡목 사이로 옥색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 가을을 더욱 가을답게 한다.

어떻든 가을은 외진 강 나루터에 황량하게 떠 있는 낡은 나룻배처럼 쓸쓸함을 자아내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왠지 가을은 낭만과 함께 청초함마저 서려있어 더욱 깊은맛을 낸다. 무주공산의 꽃이며, 구름이며,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하찮게 보일 소슬한 초승달마저 애잔하다.

청명한 하늘에 점점이 떠있는 고추잠자리와 청미래 덩굴이며 빨갛게 익은 망개 열매며, 은행잎, 도토리 그리고 들녘에 지천으로 서있는 이름 모를 풀잎까지도 그저 사랑스럽고 소중하기만 하다.

머잖은 지난날만 하더라도 무심히 흐르는 강가에는 갈대꽃과 철새들이 그리고 맑은 수면에는 이따금씩 피라미들이 뛰고 소금쟁이와 물벌레들이 한가로이 노닐곤 했다. 이제는 추억 속에나 남아있을 가을강.

달빛이 소슬하게 물 위를 비추는 밤이면 개구리들이 풀벌레와 어울려 신나게 합창을 하던 가을강. 이제는 그런 가을강도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 가고 있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때마다 더 애틋하게 가슴을 적시곤 하던 가을의 정취는 문명의 잿빛이 되어 세월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사는 도시의 삭막함과 기계문명의 매스꺼움이 아름다운 가을 풍경마저 지울 수는 없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가을 들녘에는 유리알 같은 맑은 햇볕이 쏟아져 내리고 , 고추잠자리가 넘나드는 농촌 들녘을 걷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고향의 냄새 같은 연민의 정이 가슴 한쪽에 젖어든다.

가을의 정취가 깊어 갈수록 가을꽃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국화꽃은 가을꽃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늦가을 서리에도 국화꽃은 고고한 자태로 형형색색의 가을옷을 차려 입고 가을을 사랑하는 이들의 품속에 다가선다. 구절초도 가을의 정서를 흠뻑 담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동심의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꽃은 역시 코스모스다. 이제는 그런 꽃들도 퇴색해 가는 것 같고, 그 꽃들을 사랑하던 소박한 인심도 여위어가는 듯하다. 서구의 물질문명에 찌든 우리들의 탓일까. 속절없는 세월의 탓일까. 허물어져 가는 가을 풍경이 그저 안타깝다.

메뚜기가 뛰고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정든 시골 들길이 아직도 그리워지는 것은 이 가을 나만의 정감이 아니었으면 한다. 청도 각북에서 헐티재로 올라가는 길 양편에 코스모스가 옛 자태를 자랑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이 길이라도 걸으며 남아있는 가을의 정감과 낭만을 만끽하고 싶다. 이 좋은 가을에….

장식환(시조시인'영진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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