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가 17 일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함에 따라 한동안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한일관계에 또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다음 달 부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기간 또는연말 개최가 예상됐던 한일정상회담의 전면 취소를 검토하는 등 초강경 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양국간 외교 갈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일관계는 지난 2월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독도조례 제정과 독도영유권 주장으로 급속히 악화됐다가, 6월 양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회복 기미를 보이는 듯 했으나 이번 사건으로 다시 급속하게 악화되는 양상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 직후 우리 정부는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오전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주한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고 A급 전범이 합사된 신사참배를 강행한 것은 과거의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정부는 또 라종일(羅鍾一) 주일 대사를 통해 일본 정부에 강한 유감의 뜻을 전할 예정이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이번 참배는 지난 9월 중의원 총선 압승후 종전과는 다른대외적인 '유연함'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나온 밀어붙이기식 오기정치의 재연이라는점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의 강한 반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올들어 한일관계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시작으로 해서 교과서 왜곡, 군위안부와 원폭 피해자 보상 거부 등을 통해 과거 식민지 시절의 잘못을 은폐, 미화하고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때 최악의 사태를 겪었다.
더욱이 이런 위기의 한일관계는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시도와 '신(新)방위대강' 확정 등과 맞물려 상호 충돌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특히 일각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이 집권 자민당의 총선 압승에이은 향후 일본 정부의 우경화 선회 신호탄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다음 단계로 개헌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그 것이다.
실제 지난 총선에서 31석을 얻은 공명당과 자민당과 합칠 경우 개헌 발의선인 3 분의 2(320석)을 넘는 327석을 획득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은 선거압승을 배경으로 한국과중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집권후 지금까지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왔으며 이번이 5 번째다. 그는 그러나 작년 1월 참배이후 국내외의 반발이 거세자 참배를 자제해오다이번에 돌연 강행했다. 일본 오사카(大阪) 고등법원도 지난 달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총배는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정부는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과 관련, 내각총리 대신이라는 서명도 하지 않고 화환도 전하지 않았으며 추계 예대제 첫날인데도 본전에도 들어가지않은 채 '개인 자격'으로 참배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의 선거공약을 지키면서도 대외관계를 고려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부는 그러나 일단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가 과거 침략역사를 미화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실망과 분노를 표시하고 이로 인해 일본의 미래지향적인 한일우호관계와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있는 역할을 할 의지가 있는 지 의심하고 있다.
정부는 또 일본의 총리와 책임있는 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더 이상 참배하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력히 촉구했다.
이번 참배 강행으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 정상회의시 한일 개별 정상회담과 12월로 예정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도 무산위기에 처했다.
청와대는 '셔틀 정상외교'의 일환으로 12월 예정됐던 노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취소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다.
정부는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고 충분히 예견돼 있는 만큼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한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
이번 신사참배가 다음 달초 제5차 6자회담을 앞두고 있는 북핵문제와 북일수교협상에 관련해서는 그다지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 당국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 불편한 반응을 보여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북핵문제 또는 북일수교협상과 연계한 적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송석원 경희대 일본연구소장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사실상 예견돼 온것인 만큼 과거에 비해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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