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한국 속의 세계

한국 속의 세계(전 2권) / 정수일 지음 / 창비 펴냄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개막식. 식후행사로 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의 역사 속 만남이 재현됐다.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 공연은 가야 제국 건국 신화를 배경으로 과거 두 문화가 만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아시아는 하나'라는 의도로 기획됐던 것.

이 처럼 문명교류는 서로의 삶을 소통시키는 현장이 돼 왔다.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동서 문명교류사를 주로 연구해 온 문명교류사가 정수일 교수가 '한국 속의 세계'를 펴냈다. 여기에는 우리 고유의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길고 긴 바통 터치를 통해 들어온 세계인들의 선물이라는 것, 또 우리 역시 그 긴 전달과정에서 한몫을 했다는 목소리가 담겨져 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와 고립시켜 통시적으로만 헤아려 왔지, 세계와의 관련속에서 공시적으로 이해하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저자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나 '은둔의 나라'라고 남들이 불러도 우리는 아무런 반성없이 그런가하고 지냈으며 스스로 '닫힌 나라'라는 자학적인 사관에서 헤어나지 못함을 개탄한다.

과연 우리는 세계와의 소통이 없었을까. 이 의문은 저자로 하여금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 숨어 있는 '세계'의 흔적과 유산을 찾아내는 작업에 동기를 부여했다.

"교과서 속에 화석화된 우리 역사와 문화를 구해내고, 세계사 속에서 제 위치를 찾아주는 첫 작업이었다"는 저자는 50가지 테마와 소재를 길라잡이 삼아 오늘날 못지않게 활발하게 세계가 우리의 땅을 오고 갔으며, 우리 안에는 언제나 세계가 함께하고 있었음에 주목한다.

단군신화·빗살무늬토기·고인돌·동검 등 고대 문명에서부터 서복과 허황옥, 처용 등 수수께끼의 인물들, 무녕왕릉, 팔만대장경, 혜초와 고선지, 문익점과 최부, 고려에 귀화한 외국인 등 세계인들, 고려와 이슬람, 서양인과 조선인의 만남의 현장 등을 저자는 거슬러 쫓아가 본다.

저자는 결국 우리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통해 우리가 한순간도 세계 문명간의 역동적인 교류에서 소외된 적이 없었음을, 또 수많은 문물과 문화가 오가는 그 흐름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을 '나의 것'으로 소화해낸 역량들을 발견한다.

백제금동대향로와 신라 유리가 서역악기나 로마와 연결되며 가장 한국적인 소주와 고추 역시 아랍을 비롯한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근 1천년동안 동서의 넓은 지역에 펼쳐진 보편적 문화현상인 불교의 석굴. 모두가 자연 석굴 형식을 취했으나 유독 경주 석굴암은 인공 석굴로 된 짜임식 건축물임을 뽐낸다. 그 신라인의 천원지방 사상을 반영해 지상세계인 전실은 네모꼴로, 하늘세계인 주실은 둥근 모양의 돔 천장으로 꾸민 구조는 보편타당한 것을 우리 것으로 재탄생시킨 독창성 넘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역사는 더 이상 국사로 머물 수 없다"는 당위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 안의 세계를 인식할 때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자학적 신화를 깨고 힘차게 살아 움직이는 민족이 될 수 있으며 민족의 흥망은 남과 얼마나 열심히 소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준엄한 문명의 법칙을 들어 알려준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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