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어린 자식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 보러 가는 길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내버려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가 천방둑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솨르르솨르르 몸 씻어내는 소리 밟으며 소똥냄새 구수한 판길이 아저씨네 마당을 지나 옛 이발소집 담을 돌아가는데

아버짓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

이상국(1946∼ ) 달이 자꾸 따라와요

부자간에 대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세상이 그렇게 가족관계를 건조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세상이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 간에 도란도란 대화가 많아져야 한다.

짧고 소박한 작품 속에 그려진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선연하다. 아마도 작은집으로 여겨지는데, 큰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간다. 가을 달밤이다. 제사라는 의식을 통하여 기나긴 가문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작품 속의 어린 아들이 장차 어른이 되면 또 자신의 아들과 함께 제사에 참석하러 갈 것이다. 하늘에 가만히 떠 있는 달을 따라온다고 표현하는 아들, 그 말에 대하여 "그냥 내버려둬라. 심심한 모양이다." 라고 말하는 아버지! 비록 무뚝뚝한 듯이 내뱉는 말이지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은근하고 따스한 부정(父情)이 느껴진다.

마지막 결구에서 제시되는 "아버짓적 그 달"을 통해서 시인은 유구한 민족사적 전통과 그 시간성을 인식하게 해준다. 설악산 자락이 보이는 강원도에서 태어나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상국 시인의 투박하면서도 인정스러움이 느껴지는 강원도 억양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이동순(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