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에서 펼쳐지는 장르의 파괴 혹은 통합을 엿볼 수 있는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낸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미술의 현대적인 흐름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갤러리M(053-745-4244)은 18일부터 '차규선 개인전'을 열고 있다. '분청사기의 회화적 구현'이라는 표현 하나로 그의 작품 세계는 하나의 윤곽을 드러낸다. 최근 차씨가 확립한 작품은 분청사기의 멋을 저절로 풍긴다. 흙을 머금은 흰색의 아크릴 물감은 캔버스 위를 덮어 아찔한 느낌을 자아낸다. 봉평장을 넘어가는 허생원 일원이 보았다는 달빛에 비친 메밀꽃의 풍경이랄까?
차씨는 하얗게 탄생한 캔버스 위를 끝이 부스러진 나뭇가지와 나무토막으로 긁어내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했다. 차씨의 손놀림이 만들어낸 푸른 빛이 도는 필선은 자유롭게 캔버스 위를 유영한다. 화면 전체를 날카롭게 채우고 있는 선들의 집합은 소나무가 되고 바위가 돼 산을 이루고 있다. 설악산을 힘차게 내달리는 폭포로 변해있다. 차씨가 눈여겨 보았던 주변의 풍경은 옛날 우리의 선조들이 붓과 먹으로 만들어낸 문인화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흙이 섞인 아크릴 물감은 차씨의 분청 기법에 힘입어 새로운 생명을 화면 가득히 탄생시키고 있다.
겸재 정선과 능호관 이인상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차씨의 작품 속 자연은 흙냄새 풍기는 우리의 삶의 토대로 다가온다. 생활자기였던 분청사기의 자연친화적 이미지를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차씨의 초기 작품과 변화의 전환점에 발표된 작품들도 같이 전시되고 있다. 10여 년간 차씨 스스로가 성취한 독창적 형식을 통해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서양화 전공으로 한국화적 기풍을 확립한 차씨의 작품 20여 점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는 12월 11일까지 계속된다.
26일까지 예지앙갤러리(053-794-1334)에서 열리는 '일사(一思) 석용진전'의 부제는 '조가화무(鳥歌花舞)'다. 부제 그대로 석씨의 문인화 속에는 새들이 놀고 꽃이 피어 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문인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석씨에 따르면 "동양화와 서양화의 재료·기법을 섞었기 때문"이다.
석씨의 문인화는 '현대적'으로 태어난 '현대 서예'의 결과물이다. 작품 속에선 석씨가 현대화시킨 갑골·상형문자들이 일정한 틀 없이 붓 움직이는 대로 자리잡고 있다.
그림은 석씨 작품의 현대성을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석씨의 이력이 여지없이 발휘되는 부분. 석씨가 그려낸 백로며 뻐꾸기, 참새, 매화, 대나무는 상세한 묘사력을 자랑한다. 인물 그림에선 삐져나온 머리칼 한 올도 놓치지 않은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림 속 대상물을 석씨는 서예붓으로 그려냈다. 화선지 혹은 폼보드 위에 서예붓으로 펼쳐진 아크릴 물감의 형상들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면서도 오묘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석씨의 '현대서예'의 면모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석씨의 작품 속에는 '시·공간의 다중적 관점'이 녹아들어가 있다. 전시 작품 '추정(秋情)'은 화면 가득히 가을 분위기가 풍겨져 나오지만 여름꽃이 피어있다. 그것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는 것은 봄 산란기를 나고 있는 백로의 모습이다.
석씨가 의도적으로 분할시킨 화면들은 제각각의 시간과 공간을 지니고 있다. 입체파의 그림을 보는 듯 석씨의 작품 속에선 빛이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같은 공간에 있는 하나의 물체인지조차도 의심스럽게 만든다.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이 아니요 떨어져 있어도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란 불교식 화두의 표현이다.
석씨는 '시서화 삼절(三絶)'이라는 문인들의 이상을 뛰어넘어 새로운 실험을 구사하고 있다. 빛과 시·공간의 중첩이 동양화와 서양화가 공존하는 화면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석씨의 작품 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서양화에 기반한 동양화적 감성, 이와 반대로 동양의 문인화에 바탕한 서양화적 필취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색다른 느낌을 보여준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