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제1공단 315만 평. 지난 1970년 처음 구미국가산업단지로 문패를 단 이후 30여 년이 훌쩍 넘었다. 현재 1공단은 IMF 이후 문닫은 공장이 부지기수다. 주인을 잃은 공장에는 기계들이 벌겋게 녹슨 채 나뒹굴고, 한때 잘나가던 공장의 간판이 여기저기 내팽개쳐진 모습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연간 생산액 50조 원, 수출 300억 달러에다 해마다 인구는 1만 명씩 늘고, 평균 연령이 30세로 젊고, 1인당 2만8천 달러의 주민소득 등 호화스런 대기록을 늘어놓고 자랑을 하지만 실제는 구미공단이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구미상공회의소가 올해 초 지역 내 60개 주요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출상품의 라이프사이클을 조사한 결과 도입기 2%, 성장기 22.9%, 성숙기 60.4%, 쇠퇴기 14.7%로 성숙기 이상이 75.1%나 됐다. 이미 구미공단은 청년기와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든 셈이다. 특히 성숙기와 쇠퇴기는 1년 전보다도 각각 5.2%, 0.9% 포인트나 증가한 반면 도입기와 성장기는 그만큼 감소해 수출상품 구성의 노쇠화가 급속히 진행 중임을 보여주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구미상의 김정기 과장은 "구미공단 수출상품의 시장계층은 중급품 시장 59.2%, 고급품 시장 26.5%, 전 계층 10.2%, 저급품 시장 4.1% 등으로 고급품 수출은 전체의 30% 수준에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급품 시장개척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이는 구미공단의 상품이 세계의 각 수출시장에서 중·저급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최근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 정책을 발표하면서 구미공단은 직격탄을 맞아 30여 년 넘게 지켜온 국내 제 1공단의 아성이 송두리째 무너질 위기를 맞았다. 이 때문에 구미의 38만 시민들은 물론 대구·경북 전체가 '구미가 죽으면 대구·경북이 함께 죽는다'고 정부의 정책을 성토하고 있다.
내일이면 모두 끝장나고 폭삭 망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이 참에 구미를 리모델링해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대기업이나 중앙정부의 기침 한번에 중증의 독감에 걸려 심하게 앓아야 하는 기존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구미공단의 IT산업은 너무 획일적이고 대기업에 의존적인 구조다. 섬유 등 전통 산업과의 연계, 협력네트워크 기반, 첨단선도기업 유치를 위한 차별화한 인센티브 정책수립 등이 미흡해 벽에 부딪히고 있다. 구미를 중심으로 한 IT산업을 엄격히 따져본다면 지금 '지역에 IT산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대기업의 생산공장과 하청업에 불과하고 지역의 핵심적인 경제기능 역할 등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채동익 구미시 경제통상국장은 "지역의 IT산업은 대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 중앙정부의 자원 배분 한계, R&D 투자 미흡, 각종 특구 제도에 있어서 상대적 불이익, 우수 IT전문 인력의 역외 유출 등 약점과 위협 요소를 안고 있어 언제든지 붕괴될 소지를 안고 있다"고 말한다.
박병웅 구미상의 회장은 "정부는 대기업의 눈치만 보지 말고 지자체의 확고한 의지를 결집시킨 뒤 획기적인 지원정책, 대학 및 연구소 활성화, 사회경제적 인프라 구축 등 국가 최대의 수출단지인 구미공단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사실상 현재의 구미공단은 LG(LCD, PDP), 삼성(휴대전화) 등 10여 개 대기업 군단이 포진하고 여기에 1천200여 개 중소 협력업체들이 씨줄 날줄처럼 엮여 움직이고 있는 처지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LG에 이어 앞으로 삼성 등 구미공단에 포진하고 있는 대기업들 가운데 또 다른 기업이 구미를 떠날 수도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때문에 구미시와 경북도는 당장 구미공단의 체질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75년 구미 공단은 전기·전자가 전체산업의 59%, 섬유가 41%를 차지할 정도로 섬유의 비중이 높았다. 하지만 30년 만인 올 현재 휴대전화, LCD, PDP 첨단 IT산업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섬유비중은 2.9%에 불과할 정도로 대변신을 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바 있어 이번에도 리모델링에 성공한다면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오공대 임은기 교수는 "지역의 비교우위 및 경쟁력을 고려해 디스플레이, 게임, 모바일, 임베디드, 나노산업, 반도체를 클러스터로 집중 육성하고 기술정보의 네트워크화, 시설공유화, 기업지원시스템 구축 등을 기본전략으로 대기업 붙잡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석호 도의원은 "구미공단에 포진한 각 기업의 우수두뇌에 대한 교육, 의료, 금융 등 완벽한 정주여건을 제공하는 종합적인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을 강화하고, 산·학·연·관의 교류 활성화와 지방정부와 대기업 간에 유기적 협조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구미시도 리모델링에 적극적이다. 구미시는 중소기업청과 함께 낡고 피폐해진 제1공단에 대해 획기적인 리모델링에 나설 예정이다. 전체 315만 평 가운데 우선 94만 평을 벤처기업 육성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여기에 들어설 업체들은 대기업이 발을 빼면 일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협력업체나 하청업체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기술력과 자생력을 갖춘 벤처기업들이 들어올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곳 벤처기업 촉진지구는 내년 말까지 단지조정을 거쳐 2007∼2011년까지 경쟁력을 상실한 사양산업을 대체할 신규 벤처업체 및 업종이 들어선다.
또 산업체 부설 학생 수의 급감으로 텅텅 비어 있던 1공단의 동국여고 건물을 임차해 구미테크노비즈니스센터를 설치해 내년 7월까지 창업보육센터, 벤처타운 조성사업을 마치고 영남대 등 지역대학과 연계한 기술개발 및 지원시설을 운영할 예정이다.
사업이 일차적으로 마무리되는 내년말 쯤에 50여 개의 알짜배기 벤처기업이 입주해 1천여 명의 신규인력이 고용될 예정이다. 제1공단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으로 전체 700만 평 구미공단의 산업구조고도화 작업이 이미 진행된 셈이다
구미·김성우기자 sw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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