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어린 시절의 추억

간밤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 내린 대구의 하늘도 본격적인 겨울을 예고하듯 차갑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나는 따뜻한 아랫목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도시화된 아파트 생활에 이러한 것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유난히 추위를 탄다. 그래서인지 겨울이면 온 가족이 모여 옹기종기 살며 느끼는 따뜻한 온기를 내 어릴 적 추억처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이맘때면 나는 때때로 조개탄 당번이 되어 교실난로를 피우기도 했다. 그 난로 위에 점심도시락을 앞다투어 얹어놓고 도시락을 데워먹었다. 난로 뚜껑 위의 좋은 자리에 서로 얹으려고 내 짝과 다투던 일이며, 데워진 도시락을 펴놓고 미처 점심도시락을 준비해 오지 못한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그 인정있던 교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이처럼 경쟁 없는 생활 속에서 느꼈던 낭만과 추억이 있을까? 어린 시절의 추억과 순수한 기억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나는 늘 일상생활에 쫓기며 하루하루 바쁘게 뛰어다니는 자신이 과연 참된 내 모습인가 한번씩 되돌아볼 때가 있다. 우리가 진정 자기의 본모습으로 살아가려면 어린 시절의 그 순진무구함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우리는 날마다 그 순수한 마음을 조금씩조금씩 깎아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대신 재산을, 명예를 더 채우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는 않은지. 참된 행복이란 그런 것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눈 내린 뒤의 투명한 겨울 하늘은 가슴 속에 간직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호수의 물결이 잔잔할 때 달 그림자가 맑게 비치듯이. 그러나 물결 일렁이는 일상 속으로 돌아가면 달 그림자 흔들리듯 마음속의 무구한 기억들도 여울지게 마련이다.

혼탁한 세파에서 순수한 마음 한 자락이나마 보듬고 살아가려면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은 첫눈처럼 하얀 마음과 눈 내린 다음의 겨울 하늘 같은 투명한 가슴을 오래도록 간직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박환재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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